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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의 발목잡기, 촛불을 다시 들어야 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새 정부 출범 이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고 얘기했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지만, 나는 사람들이 문 대통령의 탈권위와 소통의 모습에서 상식과 공정이 회복되고, 비정상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꽉 막힌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과 같은, 작은 희망의 싹이 움튼 것이다.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압도적인 국정지지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취임 이후 한달 반.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은 여전히 80%를 넘나들고 있다. 지지율은 언젠가는 떨어지기 마련일 테지만, 이 기록적인 수치에는 새 시대를 열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담겨있다. 지난 수십 년간 켜켜이 쌓여온 적폐의 사슬을 끊어내라는 간절한 염원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긴 바뀐 것 같은데 그 중에는 안 바뀌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내 보기에 자유한국당이 그렇다. 여당일 때는 여당인 채로, 야당일 때는 야당인 채로 그들은 한결같다. 여당일 때는 민의를 무시한 채 자기들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더니, 야당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있다. 마치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두 가지 행동 메뉴얼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새 정부 출범 이후 한국당이 보여준 행태가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물론 한국당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무작정 정부여당의 정책을 쫓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 정책을 견제해 행정부의 권력 독점을 분산시키는 역할 역시 막중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5대 인사 원칙'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는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상태다. 적어도 인사 문제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정부여당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없이 출범했다. 이 사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이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초래한 책임이 한국당에게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한 공동정범으로서 하루 빨리 이 시국을 정상화시켜야 할 책무가 그들에게 있다. 정파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초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공당이라면 의당 그래야 마땅할 터다.

그러나 한국당은 무조건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고집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오래 못 갈 것 같다"(이철우 의원), "오늘은 조국 조지는 날"(김정재 의원) 같은 발언들이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시민들은 그런 한국당을 향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키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여준 것이라고는 오로지 '반대' 밖에는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터다.

22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눈물이 화제가 됐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원내대표간 협상이 불발된 뒤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눈물을 내비친 것이다. 우원식 원대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난 한 달간 야당 대표실을 문턱이 닳도록 다니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화하면서 수모를 겪기도 했다"면서 "한국당의 태도는 정권 교체를 인정하지 않는 대선 불복"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첫번째 공약이자, 국민의 절박한 요구인 추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정 운영을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발목만 잡으면 족하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초 여야는 이날 오전 10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회동을 갖고 국회상임위윈회 의사일정과 정부조직개편심의,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위한 소위 구성, 일자리 추경안 논의 등 국회 정상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이 일자리 추경안에 합의할 수 없다고 반발해 협상은 1시간이 채 못 돼 결렬됐다.


ⓒ 오마이뉴스

결국 추경안에 대한 이견이 문제였다. 여당은 추경안 심의와 처리일정을 합의문에 포함시키자는 입장인데 반해, 한국당은 이미 야3당 정책위의장들이 합의를 본만큼 새 정부 장관 임명이 끝난 뒤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당은 특히 추경을 통해 공무원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동의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고 일정에 참여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국회 파행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인사 검증에 집중하는 편이 정략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시급한 당면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경안은 제쳐두고, 새 정부의 인사 문제에 당력을 집중시키겠다는 뜻이다.

한국당은 그렇게 함으로써 당을 추스리고 보수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같다. 뼈를 깎는 쇄신 작업을 통해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을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여당에 각을 세우고 상대방의 실수에 편승해 기회를 얻으려는 얕은 수를 스고 있는 것이다. 정치판의 냉혹한 생리를 감안한다 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겠다고 국민 앞에 읍소하던 제1야당의 현주소가 고작 이 수준이다. 


한국당을 위시로 한 야당의 결사 반대 속에 추경안을 비롯한 새 정부의 개혁과제들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강도 높은 개혁과 혁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적폐를 뿌리 뽑으라는 촛불시민의 여망도 현재로선 기대 난망이다.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의 위상과 역할을 생각하면 현실의 무력감은 생각보다 깊고 크다.

여기저기서 세상이 바뀐 것 같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지만, 세상은 '아직' 바뀐 것 같지 않다. 세상이 바뀐 것을 체감하려면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를 통해 사회 곳곳에 덕지덕지 쌓여있는 적폐들이 청산돼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자괴감을 들게 만드는 뉴스들 뿐이다. 그 중의 으뜸은 촛불시민들로부터 적폐의 한 축이라 평가받던 한국당이, 오늘의 국정혼란을 만든 원죄가 있는 그들이 적폐 청산의 시대적 요구를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니러니가 없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이래서는 절대로 바뀔 리가 없다. 적폐 세력이 완장을 차고 앉아 개혁 세력을 몰아붙여서는,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윽박지르는 적반하장이 계속되어서는, 지지율 10%의 정당이 지지율 80% 정부의 멱살을 잡아서는 달라질래야 달라질 수가 없다. 지난 겨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 그 겨울 촛불을 왜 들었는지 환기해야 한다. 고작 이런 꼴을 보려고 1700만 개의 촛불이 켜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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