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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특별하지 않은 문 대통령의 휴가가 '특별'한 이유

ⓒ SBS비디오머그 화면 캡쳐


휴가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공개돼 화제다. 특이한 것은 문 대통령이 휴가 기간에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습은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끊고 대통령 전용 별장이나 모처에서 정국 구상에 몰두하던 전직 대통령들과는 확연이 차이가 난다.


1일 청와대는 공식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강원도 평창 오대산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공개했다. 청와대가 이날 공개한 내용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대산 상원사를 방문하는 도중에 시민들과 만나 서슴없이 대화하고 셀카를 찍는 모습이 담긴 총 8장의 사진이다.

휴가 첫날이었던 지난달 30일 평창 스키점프대에 오른 문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SBS비디오머그'의 영상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해당 영상에는 문 대통령이 스키점프대가 있는 4층 전망대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물을 둘러보며 시민들과 대화하고 사진 찰영을 하는 장면들이 담겨있다.


그런가 하면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중 한 장을 리트윗한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우리가 원한 건 바로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다. 낮은 자세로 국민과 눈을 맞추는 대통령. 참 보기 좋다. 베리굿이다"라는 글과 함께 오대산 등산로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있는 문 대통령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문 대통령의 휴가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에는 이처럼 시민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인상적인 것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난다는 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한민국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만났지만 시민들은 전혀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대통령을 만나면 셀카는 기본이고, 대화에도 주저함이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시민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문 대통령의 휴가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저도 휴가 모습이 주목받고 있다. 2013년 7월 말 박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에 위치한 저도로 휴가를 떠났다. 저도는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여름 휴양지로 자주 애용하던 장소였다. 박 전 대통령의 윤년시절의 편린이 숨쉬는 추억의 장소가 바로 저도다.

7월30일 박 전 대통령은 몇 장의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옛 생각을 더듬으며', '저도의 추억', '산책하면서' 등의 소제목이 붙은 사진 5장이었다. 그 중 특히 유명세를 탄 사진은 박 전 대통령이 모래 위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귀를 적고 있는 사진이다. 


아무도 없는 너른 백사장 위에 '저도의 추억'을 써내려가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인생 사진'으로 불려도 무방할 만큼 빼어난 연출력을 자랑한다. 구도도 훌륭할 뿐더러 남기려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함께 공개된 다른 사진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오마이뉴스


흥미로운 것은 공개된 사진 그 어디에도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은커녕  보좌진의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다. 수려한 배경 속에서 과거를 추억하며 한가롭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단 한 사람의 모습만이 뚜렷하게 각인돼 있을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저도 휴가 사진에는 오직 '대통령' 자신밖에는 없다.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흘러가버린 박근혜 정부의 지난 4년을 이 사진들이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와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휴가문화 정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전 정권의 헌정파괴와 국정농단으로 인수위도 없이 선출된 다음날 바로 업무에 돌입해야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후 8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쉴틈없이 달려왔다. 엄중한 상황이긴 하지만 휴가지에서도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하니 가능한만큼 '망중한'을 즐겨주시기 바란다. 대한민국은 과중한 노동시간으로 병들어있는 사회다. 처방은 오로지 노동시간 단축과 충분한 휴식 보장뿐이다. 이번 휴가를 통해 심신을 가다듬고 재충전해서 돌아오시길 바란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휴가와 관련해 지난달 31일 밝힌 논평 중 일부다. 문 대통령이 연차를 다 쓰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이유가 추 대변인의 논평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식권을 당당하게 사용하도록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취지다. 그렇게 계획된 문 대통령의 여름 휴가는 시민들과 함께다. 나 홀로 외따로이 떨어져 있던 누군가의 휴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휴가 기간 중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대통령과 아무도 없는 곳을 홀로 거닐던 대통령,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대통령과 인적 드문 어딘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대통령. 두 사람의 휴가 모습은 그들이 살아온 인생 만큼이나 극명하게 대비된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누군가에게 보통 사람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일 터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출난 사람들의 특별한 일상이 아닌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소탈한 일상에 더욱 공감하고 감동한다.

문 대통령의 휴가 풍경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대통령이라는 '완장'을 떼고 나면 그는 보통 사람의 모습 그대로다. 지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모노레일 안내원의 설명에 어린 아이처럼 연신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스키점프대의 아찔함에 눈을 질끈 감는 영락없는 보통 사람이다. 


문 대통령의 휴가 모습이 좋아보였던 건 그래서다. 인간미 물씬 풍기는, 진득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하지 않은 문 대통령의 휴가가 아주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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