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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탁현민 사퇴하라는 한국당 여가위원, 돼지발정제 홍준표는?

ⓒ 오마이뉴스


21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가 반쪽짜리로 진행됐다. 자유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이 과거 여성 비하 글로 논란을 빚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파면을 촉구하며 실력행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은 정백현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강하게 항의했고 한 차례 정회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급기야 이후 속개된 회의에 불참했다.

여가위원들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여성을 성적도구로 대놓고 비하한 '여성 혐오의  대명사' 탁 행정관이 여론의 질타와 여성 의원들의 수차례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주요행사를 챙기고 있고 청와대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각성하고 탁현민 행정관을 즉각 파면하라"는 내용의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여성 인권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낸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의 집단행동을 존중한다. 대한민국 남성(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의 저급한 여성 인권 의식과 젠더 감수성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탁 행정관의 인식은, 비록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다고 해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탁 행정관을 향해 여성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반 시민들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아무리 과거의 잘못이라 변명하고 옹호한다 해도, 탁 행정관의 글이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주소와 맞닿아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탁 행정관 논란은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하는 '마초공화국'의 구조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여성에 대한, 여전히 권위적이고 우월적이며 가부장적인 폭력에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해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당연하고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가 시민들의 공감을 받질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먼저 정치적 의도의 문제다.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이 집단 행동에 앞서 자당 소속 의원들의 비뚤어진 여성 인식과 성도덕을 바로잡고자 노력해왔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지 모른다. 한국당이야말로 그동안 소속 의원들의 성 관련 추문이 끊이질 않던, 그들 표현대로라면 '여성 혐오의 대명사' 격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세간으로부터 '성누리당', '성나라당'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을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새누리당 성추문'을 검색하면 민망하고 낯뜨거운 관련 자료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다.

여성에 대한 한국당의 아찔한 인식은 비단 성추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마사지걸' 발언, 강용석 전 의원의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 정우택 원내대표의 '관찰사 관기' 발언 등 여성을 멸시하고 상품화하려는 시도가 그동안 끊이질 않았던 것을 상기하면 한국당의 편협한 여성 인식은 그 뿌리가 아주 깊고 질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과거 포함) 한국당 내 여성의원들이 자당 내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와 비하, 폭력적 여성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개선과 시정을 요구한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설령 내부적으로 그러한 노력들이 있어왔다 하더라도 한국당이 '여성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던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탁 행정관의 조악한 인권 의식에 파면을 요구하면서도 당장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대표의 '설거지 발언'은 물론이고, 심지어 '돼지발정제'논란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들이 아닌가.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의 '정당한' 비판이 정치공세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무릇 비판은 동일한 기준과 원칙에서 이뤄져야 한다. 탁 행정관의 과거 인식을 문제 삼으려면 당내의 저급한 여성 인식과 인권 의식 역시 같은 선상에서 다뤄져야 마땅할 터다. 그런 의미에서 동료의원들이 보이고 있는 상식 이하의 여성 인식과 성도덕에는 철저하게 침묵하면서 '여성 혐오'를 운운하는 건 여성에 대한 기만이자 위선이며, 또다른 폭력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이 탁 행정관 논란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남성의, 혹의 여성의 편협한 여성 의식이다(한국당 소속 여가위원 6명 중 5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불평등, 폭력 문화가 재확인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탁 행정관의 거취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은 '진실로' 따로 있다. 이번 논란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려면 명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을 향한 차별적 인식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여성에 대한 야만적 폭력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성을 착취의 대상이자 상품으로 인식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감쪽같이 실종됐다. 대신, 논란은 어느새 탁 행정관의 거취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 싸움으로 변질돼 버리고 말았다. 정치공방 속에 이번 논란의 핵심인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와 인권 문제는 교묘하게 희석되고 왜곡되고 있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여성 차별과 인권 문제가 한 개인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공방으로 파편화돼 버리는 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방법은 없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여성들이 받는 차별과 불평등, 성적 착취와 폭력은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과 퇴행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이를 앞서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음은 물론이다. 여성의 인권 보호와 권익 신장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여성을 성적·경제적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청산시킬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여성 인권의 문제를 한낱 정치공방으로 '소비'시켜버리는 정략적 행태는 반드시 근절돼야 마땅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리고 이번에도 또다시 재연되고 있듯이, 정치공방에 휘말리는 순간 여성 인권 문제의 본질은 순식간에 휘발돼 버리고 마는 탓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논란의 본질은 탁 행정관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된 여성에 대한 야만적 폭력의 역사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느냐'다. 한국당 소속 여가위원들은 정치공세에 앞세 여성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우선 순위 설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가 끊이질 않은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당이야말로 이를 여실히 입증하는, 살아있는 '반면교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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