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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우리는 안철수 의원에게 또 속고 있다

국민의당 창당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 발을 딛은 것은 지난 2013 4 24일 치뤄진 재보궐선거를 통해서였다. 그는 이 선거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해 60.46%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새누리당의 허준영 후보와 정의당의 김지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당시 그의 노원병 출마는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그가 노원병이 아닌 부산 영도에 출마해 새누리당의 김무성 후보와 겨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자 정치도의에도 어긋나는 노원병 보다는, 안철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산 영도에서 여권 실세와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안철수 후보가 선택한 곳은 험지인 부산 영도가 아닌 안전한 서울 노원병이었다. 당시 필자는 안철수 후보가 부산 영도로 가야 했다고 생각했다. 노원병 출마가 정치도의상 맞지 않을 뿐더러, 출마선언의 과정이 전혀 아름답지 못하며, 그동안 정치개혁과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려왔던 안철수 후보의 이미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연합뉴스


당시 안철수 후보는 핵심 측근이었던 무소속 송호창 의원을 통해 국민들이 열망하는 새로운 정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어 새로운 정치를 전국적 차원에서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이곳을 선택했다며 노원병 출마의 의미를 부여했다.

송호창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주목해야 할 부분들이 몇가지 눈에 띤다. 먼저 '새로운 정치' '전국적 차원'에서 펼치겠다는 포부와 '노원병' 사이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 새로운 정치(A)를 전국적 차원(B)에서 하기 위해 노원병(C)을 선택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C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제시한 A B는 취약한 명분을 돕기 위해 급조된 첨가물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지역구를 선택해도 전혀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A B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동원된 수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면서 전혀 새롭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것도 문제였다. 당시 안철수 후보 측은 '삼성 X파일 공개'로 의원직을 상실한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과의 사전교감 문제를 두고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노회찬 전 의원에게 전화로 예의를 갖추었다고 언론에 공개했지만 사실은 사전교감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출마였던 것이다. 당시 정의당은 "안 후보 측이 일방적으로 출마선언을 함으로 인해 노원 유권자들과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방식이,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안철수 후보다운 방식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안철수 후보의 선택은 당선 가능성을 놓고 봤을 때는 합리적이었는지 몰라도, 정치도의를 저버린 정치공학의 결과였다. 안철수 의원 본인으로서는 억울할지 몰라도 너무도 흔해 빠진 우리 정치의 낡은 관성에 비추어 볼 때 이를 새정치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 장황하게 안철수 의원의 국회진출사를 살펴본 것은 국민의당 창당 과정이 그 당시와 대단히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하나 하나 살펴 보자. 



ⓒ 연합뉴스


국민의당은 창당 발기취지문에서 "시대변화에 뒤쳐진 낡고 무능한 양당체제, 국민통합보다 오히려 분열에 앞장서는 무책임한 양당체제의 종언을 선언한다" "시민의 정치, 국민 중심의 정치가 담대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우리는 국민의 '더 낳은 삶'이란 목적을 향해 이념적으로 유연할 것"이라며 "진보와 보수의 양날개를 펴면서 합리적 개혁을 정치 중심에 세우고 그 힘으로 정치를 바꾸고 세상의 큰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이 양당체제의 무책임을 비판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양당체제의 폐해를 공략해 그 틈바구니 속에서 반사이득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당제 공략은 조직과 세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국민의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전략이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호남 비주류 의원들을 합류시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삼으려는 것도 정치공학적으로 대단히 유효하다. 마치 안철수 의원이 노원병을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바라보면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먼저 분열에 앞장서는 무책임한 양당체제를 비판하면서도 그들 자신이 야권 분열을 주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현 상황은 더불어민주당 내의 혁신 갈등을 안철수 의원과 탈당파들이 이용했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벌어지는 이같은 야권분열은 그 어떤 경우라도 명분을 얻기 힘들다.

시민의 정치, 국민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면서 호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앞 뒤 말이 맞지 않는다. 이 역시 새로운 정치를 전국적인 차원에서 시작하기 위해 노원병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불분명하다. 시민의 정치, 국민 중심의 정치를 펼치려면 호남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이 했던 것처럼 탈호남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민의당에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혁신안에 반발해 탈당한 더불어민주당의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호남 기반의 지역주의 색채만 점점 짙어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실익을 위해 호남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결국 호남은 국민의당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고립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지게 됐다. 이는 호남을 또 다시 정치분열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시대정신인 국민화합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 더팩트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합리적 개혁 노선을 통해 정치개혁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부분 역시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 좋아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합리적 개혁이지, 국민의당은 그에 걸맞는 인식을 갖춘 인재와 진용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현재 안철수 의원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비주류가 합류한 형태다. 그런데 그들은 컷오프 20%의 공포에 떨고 있던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이 대부분이다당의 합류한 인사들 중 젊고 개혁적인 인물은 권은희 의원 정도가 유일한데, 그조차도 자신을 발탁한 김한길 의원의 눈치를 보는 정치 신인에 불과할 뿐이다


심혈을 기울였다는 인사들 역시 정치개혁과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인재들이 아니라, 호남을 지역구로 둔 탈당파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다분히 호남정서를 의식한 표적영입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 개혁, 사회 변화, 시민 중심의 정치, 합리적 중도 등 말의 성찬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보여지는 모습은 기성 정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는 이념적인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개혁이 뜬구름 잡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러나 정작 더욱 중요한 문제는 국민의당의 정치노선과 철학이다. 국민의당이 이 부분에서 자신들이 '거악'이라 칭한 양당체제의 폐해를 대신할 대안 세력이 될 수 없다면 이 정당의 효용가치는 먼지처럼 사라진다. 따라서 국민의당이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시대정신과 국민여망을 반드시 구현해 내야만 한다. 우리 정치의 당면 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 개혁과 혁신, 그리고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있다. 이는 시대정신 및 국민여망과도 일치한다. 국민의당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변화와 개혁,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더 낳은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국민의당은 양당체제의 한계와 폐단을 공략하는 양비론과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와 불만에 편승하는 방법 이렇게 두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전략은 종편과 수구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유포시킨 참여정부와 친노의 '호남홀대론'과 맞물려 문재인 체제에 실망한 호남지역의 유권자들의 정서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의당이 기성정당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살펴 본 것처럼 국민의당은 표면적으로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포커스뉴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치와 사회의 혁신을 갈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승화시킬 대안 정당이지 또 다른 기성 정당의 출현이 아니다. 국민의당이 지니는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의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여론의 동향이 입증한다. 2016 1월 첫째주 한국갤럽의 '총선에서 어느 당을 지지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새누리당은 35%를 기록했고, 국민의당은 21%를 획득했다. 이는 19%에 그친 더불어민주당을 2% 포인트 가량 앞서는 결과다. 리얼미터가 1 4일부터 8일까지 조사한 결과에서는 새누리당이 36.1%, 더불어민주당이 20.3%, 그리고 국민의당이 18.7%를 기록했다. 오차범위 내에서 두 정당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모양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의당이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지율은 안철수 의원이 지난 2013년 신당창당을 앞두고 받았던 지지율과 비교해 보면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당시 여론조사 기록을 살펴보면 조사기관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약 35%대의 지지율을 보였다. 새누리당이 40%, 민주당이 12% 대의 지지율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기록적인 지지율이었다. 당시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이 새누리당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었고, 민주당보다는 무려 3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강렬하고 파괴적이었는 지가 당시의 여론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제는 지금이다. 국민의당이 양당체제에 식상한 국민들의 관심과 신당 프리미엄, 그리고 흔들리고 있는 호남표심을 기반으로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당시와 비교해 본다면 전국 지지율은 반토막이 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과의 격차 역시 당시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 극명한 차이가 보여주는 것은 안철수 현상의 거품이 빠졌다는 것이며, 국민의당에 거는 국민의 기대 역시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태풍처럼 정국을 휘몰아치던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부분 희석되어 있고, 합류하고 있는 인물들이 기성 정치에 물들어 있는 낡은 인재들이라면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율은 점점 더 빠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야권 결집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요구는 점점 높아져 갈 것이고, 국민의당에 호의적인 호남 민심 역시 대단히 유동적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국민의당의 존재는 결국 야권분열을 뜻하는 것일 뿐, 정치적 의미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설사 국민의당이 일부 정치 평론가들이 기대하는 현실적인 수치인 50석 안팎을 가져간다 하더라도 이것이 야권 전체, 나아가 이 나라 정치 발전과 국민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율의 총합이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야권의 지지율은 정의당까지 합치면 오차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야권이 분열하지 않고 연대와 화합할 수만 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새누리당의 150석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지금 이 길을 마다하고 독불장군식의 외길을 가고 있다. 그것도 스스로 대의와 명분을 부여해가면서 말이다.



ⓒ 세계일보


이 장면은 지난 대선의 클리셰다. 지난 대선에서도 야권은 같은 상황에 직면했었고, 끝내 이를 극복해 내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대로 흘러간다면 아마도 야권은 지난 대선의 전철을 밟게 될 공산이 99.9%. 이대로라면 야권의 필패는 기정사실이라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 정치는 새누리당이라는 거대 수구보수 정당의 폭주를 막아낼 정치체제가 절멸하게 된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일방적 독주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내각제 개헌이나 이원집정부제를 반드시 관찰시키려 할 것이다과반을 조금 넘기고 있을 뿐인 새누리당의 전횡과 폭주도 막지 못했는데 그 다음은 무엇으로 그들과 대적할 것인가.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의 존재는 바로 이와 같은 정치적 함의가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이다. 정치가 이렇게 암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을 정도의 긴박함이다.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현실 정치에 등장하기 전과 후를 가정해 보면 지금 겪고 있는 야권 위기의 본질은 이내 드러난다. 그렇다. 안철수 의원의 존재 자체가 야권의 가장 큰 위협이다. 중도 개혁가로 포장된 그에게 우리는 또 다시 속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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