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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를 '금지'시켜야 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자신감의 발로일까, 아니면 열세를 감추기 위한 허세일까.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각 대선후보 진영이 내놓은 대선 판세를 보면 과연 어느 후보가 앞서 있는지, 누가 유리한지 알 길이 전혀 없다. 각 정당들은 알고 있을 대선후보 지지율을 유권자가 파악할 방법이 없으니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 답답함과 궁금함이 쌓여가고 있을 뿐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를 금지하고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선거에 관하여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모의투표나 인기투표에 의한 경우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제108조 1항'에 의거해서다.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가 금지되는 6일 동안 유권자는 각 후보들의 선거캠프에서 발표되는 형세 분석에 의지해 누가 유리한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것은 각 선거캠프의 판세 예측이 모두 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주장만 놓고보면 현재의 판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물론이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역시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탓이다.

공식선거운동 마지막날이었던 8일 각 후보캠프에서 나온 형세 분석을 살펴 보자.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전까지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던 문 후보 진영은 승리를 낙관하면서도 혹시 모를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송영길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가능하면 과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지만 겸손한 자세로, 한 표 한 표가 중요하다는 자세로 뛰겠다'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안 후보 캠프는 문 후보와 초박빙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세대별 투표율과 유보·부동층 분석을 통해 판세를 예측한 결과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안 후보와 문 후보가 초박빙 양자대결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40% 미만에 갖혀있기 때문에 안 후보가 막판 뒷심을 발휘할 경우 40% 이상의 득표로 역전할 수 있다는 것이 안 후보 캠프의 분석이다.

역전을 확신하고 있기는 홍 후보 캠프 역시 마찬가지다. 이철우 총괄선대위원장은 8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자체 분석으로는 이미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홍 후보 득표율은 39%로 36~37%를 얻은 문 후보와 2~3포인트 차이가 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전날 페이스북에 막판 보수 대결집이 일어나 문 후보를 '40% 대 38%'로 이길 것이라고 밝혔던 홍 후보의 전망과 대동소이하다. 


이처럼 문·안·홍 캠프 모두 서로 자신이 유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는 가운데 유권자는 선거 판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른바 '깜깜이 선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각 후보 진영이 여론조사 결과를 유리하게 해석해 퍼트릴 가능성이 있고, 이것이 SNS나 온라인 등을 통해 악용될 공산이 커진다는 점이다.


ⓒ 오마이뉴스


애초 공직선거법이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시킨 이유는 선거에 임박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왜곡하고, 그에 따라 선거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와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각 후보진영에서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선거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가 하면, SNS를 비롯해 온라인에서는 각 후보들의 지지율과 관련해 확인할 수 없는 각종 '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를 금지시킨 공직선거법의 목적과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다.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도입된 법조항이 외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현재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여론조사 발표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를 제한하는 나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도이며, 그마저도 프랑스는 선거 전날과 선거일에 한해서만 공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다. 1994년 이 조항이 포함된 공직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돼 오고 있는 중이다. 국민의 알권리 침해, 혼탁선거 조장, 여론 왜곡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진 탓이다. 원래 22일간 공표를 금지시켰던 법조항이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일 6일전'으로 굳어진 것도 이같은 사회적 논쟁의 결과였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를 폐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현재 정치권의 이해타산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작년만 해도 중앙선관위가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기간을 이틀로 줄이자는 의견을 냈지만 국회의 소극적 움직임 탓에 물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의  폐지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이기고 있는 쪽은 이기고 있는대로, 지고 있는 쪽은 지고 있는대로 전략적 활용 가치가 높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전자는 자신들의 우세를 확증하는 수단으로, 후자는 판세를 뒤흔드는 무기로 여론조사 결과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로 인한 폐해다. 주지한 것처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야 할 선거가 각 후보진영의 정치공학에 위해 훼손되는가 하면, 지지율과 관련한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가 마구 양산되면서 유권자의 표심이 왜곡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도 근본적으로 역행하는 일이다.

여론의 조작과 왜곡을 막기 위해 도입된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가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정한 선거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선거의 투명성 확보는 대의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작용과 폐해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를 '금지'시켜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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