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명분없는 국정교과서, 당장 철회하라

명분없는 싸움을 하지 마라.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 봤을 고언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한비는 채나라 환공을 예로 든 <한비자> 32편 외저설에서, '명분없는 싸움은 이기기도 힘들고 장차 큰 일을 도모하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만큼 명분은 중요한 것이다. 명분이 없다면 싸움에서 이기기도 힘들고,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외면받기 쉽다.

명분없는 싸움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에게 명분이 없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장 국민여론부터 폭발 일보 직전이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이 과반을 훌쩍 넘어섰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도 '국정교과서로 수업을 받을 수는 없다'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민심을 얻지 못한 국가 정책에 명분이 있을 리가 없다.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도 난리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학계와 교육 현장의 강력한 목소리야말로 국정교과서의 '명분없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국정교과서의 집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고, 심지어 대안교과서를 준비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실정이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의 97% 가량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수중도 성향의 역사학자들마저 "국정교과서 만은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국정교과서에 명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보다 더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 있을까.

외신들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비판 기사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P통신에서도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AP통신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을 통치했으며 성공적인 경제 전략가로서의 치적조차 시민 억압의 잔혹한 행적 탓으로 그 빛을 잃은, 살해당한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박근혜 정부에게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며, "박 대통령이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낫게 만들려고 교과서를 다시 통제하에 두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고, 중국의 신화통신 역시 "국정 역사교과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를 미화하고 젊은이들이 다양한 역사 해석을 접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영국의 BBC와 아랍권 최대 언론인 알자지라도 국정교과서 논란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도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강도높게 비판했으며, 심지어 일본의 26개 시민단체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외신들마저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제3자의 시선은 객관적 지표로써 아주 유효하다. 정부 여당이 강행하려는 국정교과서에 명분이 없다는 방증이다





당론으로 국정교과서 찬성입장을 채택한 새누리당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공학 차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수도권 중도층을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의원들의 반발과 이탈이 점점 가속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당 내에서도 반대 의사가 표출되고 있는 것 역시 국정교과서의 '명분없음'을 그들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국정화 당론을 채택한 새누리당은 불과 2년 전에는 자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국정제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들은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권위주의 내지 독재국가라며, 국정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입장이 돌변한 것이다. 자가당착의 결정판을 보는 듯한 이 졸렬한 변신이 의미하는 것은 국정제 전환의 논리적 허구성이다.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이 정치공학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정부 여당에게 애시당초 명분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정교과서에 명분이 없으니 각계각층의 반발과 반대가 잇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시민들과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국정화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고, 규모는 나날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앞으로 국정교과서로 배우게 될 당사자들인 중고등학생들의 반대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촛불을 들고 가두시위에 참가하며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SNS를 통해 전해지는 어린 학생들의 애타는 절규는 안타까움을 넘어 가슴 뭉클한 울림이 느껴진다. 누가 저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을까? 이는 기성세대라면 반드시 되물어야 할 질문이다.





정부 여당은 국정교과서를 가리켜 '올바른 교과서'라 칭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본 가장 끔찍한 비유다. 과연 어느 누가 '올바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권이, 권력이 '올바름'을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가 넌센스다. 올바름을 판단하는 주체는 정권이 아니며, 그 방법 역시 권력이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부딪히고 교감하는 과정 속에서 시민주체들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 판단에 의해 '올바름'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가치판단의 방식이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자신들의 결정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역사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겠다 한다. 야만이란 바로 이와 같은 인식과 태도를 말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는 바로 이같은 야만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참극이다.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들은 권력의 야만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본능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정화 반대 시위가 이를 증명한다.

명분이 결여된 싸움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이는 역사가 입증하는 변치않는 진리다. 박근혜 정부는 명분없는 국정교과서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 민의를 거스르는 권력은 언제나 불행한 결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이를 뼈져리게 체험한 역사의 산증인이 아닌가.




관련글 ▶ 우리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 (클릭)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부는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