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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청문회, 얼마나 털 것이 없었으면

오마이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 12일, 국회에서는 진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야당의원들이 김 후보자의 도덕성과 관련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보통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의혹에 야당의 공세가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지난 2000년 이후 관성처럼 굳어진 정형화된 패턴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야당은 도덕성 대신 김 후보자의 정치 성향과 경력·이력 등을 집중 추궁했다. 이유는 있었다. 도덕성과 관련해 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20년 전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과 여행사로부터 받은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관련된 법관 윤리강령 위반 의혹 등이 전부다. 그 외에 인사청문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표절, 위장전입, 병역면탈 등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뜻밖의 진풍경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다. 야당이 김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에서 손을 놓자(?) 여당이 질의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야당이 도덕성 검증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뒤, 부동산 투기·위장전입·세금탈루·논문표절 등의 여부를 물었고 김 후보자로부터 "없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백 의원은 이어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가 공개한 재산신고내역을 보면 고위법관 가운데 100억원 이상 소유자가 5명이고 169명의 평균 재산이 22억9476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억6000만원이 늘었다. 김 후보자가 31년 법관으로 근무해서 배우자와 합한 재산이 6억여원이다. 평균의 3분의1에도 못 미친다"며 김 후보자의 도덕성을 높이 평가했다.

도덕성과 관련해 특별한 흠결사항이 드러나지 않자 야당은 김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 경력과 이력 등을 공략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특히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사실을 거론하며 김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려 애를 썼다. 이 과정에서 "사법 숙청, 피의 숙청" 같은 극단적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념문제로 개인의 사상을 재단하는 이른바 '색깔론'이 등장한 것이다.

활동 회원이 480여명에 달하는 법원 내 최대규모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성소수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및 문화 진작에 힘쓰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외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 법률 개선에 기여하고, 판사의 독립성을 해치는 사법부 내의 권력집중과 그에 따른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문제라는 야당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법의 근본 취지와 이념에 부합하는 일일 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거론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부르짖고 있는 야당이 사법 권력 분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진보성향이라는 이유로 문제삼는 것도 온당치 않다.

더욱이 판사들의 학술연구 모임에 '색깔론'을 덧씌워 김 후보자의 편향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견강부회'나 다름이 없다. 외려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해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양승태 대법원장이기 때문이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판사들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논란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만 봐도 이는 명확해진다.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양심에 따라 소신있게 판결해야 할 판사들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압박을 받는가 하면, 대법원이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문서를 만들어 인사자료 등으로 활용했다는 블랙리스트 파문이 불거졌다.

어디 이뿐인가. 양 대법원장이 법원 인사와 사법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의혹도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의 의사에 반사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판사들의 88.2%가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들이 외부의 영향력에 무언의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양 대법원장 체제의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방증이라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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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법개혁이 절실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김 후보자가 사법개혁의 소임을 감당해 낼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지,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사법부 내의 권위주의와 관료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위상을 어떻게 회복시켜 나갈 것인지 등에 대한 김 후보자의 생각과 복안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그러나 야당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 숙청, 피의 숙청이 일어날 것이다"(이채익 한국당 의원), "춘천경찰서장이 경찰총수가 되는 게 경찰 내에서 납득이 되겠나, 육군 준장이 육군 참모총장을 하고 춘천지검장이 검찰총장을 하는 겪이다. 이런 건 쿠데타 이후에나 있는 일이다"(장제원 의원),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에 임명된 점에 대해선 최종책임자로서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우려가 많다"(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등 '색깔론'이나 김 후보자의 경력과 이력을 문제삼는 질의가 인사청문회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색깔론'은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경력과 이력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의 하나인 조직 내 서열·기수문화의 잔재라는 측면에서 시대착오적인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안팎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목받고 있는 양 대법원장의 존재 자체가 설명이 안 된다. 김 후보자의 경력과 이력을 문제삼는 것 역시 그들이 서열과 기수에 목을 매는 전근대적인 인식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사법 신뢰도가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제일 낮아요. 그러면 낮은 신뢰도를 계속 그간의 관행, 그간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낮은 신뢰를 유지할 거냐. 이 낮은 신뢰도를 파격적으로 한번 극복해 나갈 것이냐. 후자가 돼야 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김명수 후보자 지명이 저는 장고 끝의 묘수고 호수다. 악수가 아니다 라고 봅니다. 이걸 사법 쿠데타다, 저는 그분들이 해본 게 쿠데타밖에 없기 때문에.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좀 충격적이면 다 쿠데타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한국당 의원이 김 후보자 지명을 두고 '사법 쿠데타'라고 비판하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3일 tbc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날린 '일갈'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는 도중 문뜩 노 원내대표의 쓴소리가 뇌리를 스쳐갔다.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알 것도 같다.

군사독재문화가 남긴 흉물인 '색깔론'과 서열·기수문화에 집착하는 야당의 맹목적인 정치공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비유만큼 적확한 비유가 또 없을 터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법관에게 특정 정치세력에 줄서야 출세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줘 재판이 왜곡될 수 있다", "사법 숙청, 피의 숙청이 일어날 이다"라며 극강의 '적반하장'을 보여주고 있는 야당의 후안무치와 몰염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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