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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 보이콧 선언한 한국당, 염치는 어디가고?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이 2일 돌연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검찰이 김장겸 MBC사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하면서다. 앞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돼 수사 중에 있다며 법리 검토 이후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김장겸 사장에 대해 신변확보에 나선 것은 지난 1일이었다. 부당노동행위 의혹과 관련해 서부고용노동지청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출석요구를 받았던 김장겸 사장이 그에 불응하자 강제 구인에 나선 것이다. 이날 '방송의 날' 행사를 위해 여의도 63빌딩 컨벤션 센터를 찾은 김장겸 사장은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황급히 자리를 피한 이후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한국당은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리고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정기국회 보이콧이라는 초강경 수단을 꺼내 들었다.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문재인 정부의 의도적인 언론 파괴 행위이자 방송 장악 음모라고 규정한 것이다.


'언론 파괴'와 '방송 장악'.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수사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 움직임에 대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범시민사회 역시 저렇게 주장했었다. 언론 파괴와 방송 장악 음모를 당장 중단하라고.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언론은 '확실히' 파괴됐고, '명백하게' 장악당한 게 맞긴 맞는 모양이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의총 모두 발언을 통해 특유의 독설을 쏟아냈다.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성 귀족노조를 앞장세워 한국 사회 전체를 강성 귀족노조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중심이 돼 MBC·KBS를 '노영방송'(노조가 방송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방송)을 만들어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고 한다"는 등의 작심발언을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요약하면, MBC·KBS노조의 파업은 '노영방송'을 만들기 위한 강성 귀족노조의 저의가 깔려 있으며, 그들의 배후에 문재인 정부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말이다. 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아무리 야당의 처지가 된 한국당의 입장을 감안한다 해도 홍준표 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언론 파괴'와 '방송 장악'을 입에 담고, 언론 자유와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행동에 나선 전국언론노조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언론 장악을 시도해왔던 당사자가 바로 한국당과 바른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임기 초 이명박 정권이 공공성과 중립성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겨야 할 방송통신위원장에 MB의 멘토이자 최측근인 최시중씨를 임명하며 언론 장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한국기자협회가 언론사 기자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84%가 최시중씨를 반대했을 정도로 방통위원장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었었다. 언론 독립권의 침해에 대한 깊은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언론계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부적격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최시중씨를 끝끝내 방통위원장에 임명시켰다. 이후 언론환경이 어떻게 변질돼 갔는지는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이다. 정부여당은 미디어법 날치기로 조중동 족벌언론의 숙원이었던 '신문·방송 겸업'의 물꼬를 터주었으며, 미디어렙법을 통해 종편에 자유롭게 광고영업을 할 수 있는 엄청난 특혜까지 부여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이명박 정권은 방송사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꽂으며 본격적으로 방송 장악에 나섰다. 그들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와 PD들을 무더기 징계·해고하는 칼바람을 일으키며 방송을 틀어쥐기 시작한 것이다. 정연주 KBS 사장이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전방위적인 사퇴 압력에 시달리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결국 정연주 사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를 당하고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는 등 정권의 집중 표적이 된 끝에 강제 해임됐다(그러나 이후 배임 혐의는 대법원 판결로 무죄가 확정됐고, 해임 역시 무효 확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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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이명박 정권의 집념은 이처럼 치밀했고 악랄했다. 그들의 행위가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흔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홍준표 대표의 발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를 언급하며 이명박 정권이 "좌편향 MBC를 바로잡기 위해 미디어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의 종편이 종일 편파 방송을 하지만, 종편을 만든 배경은 MBC의 좌편향 방송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당시 이명박 정권과 정부여당이 아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언론 환경을 손봤다는 뜻이다. 표현 그대로, 좌편향된 언론 환경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국정운영을 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보수 족벌언론들의 방송 겸업을 승인하는 미디어법을 추진하고 종편을 만들었다는 거다. 그러나 지금껏 한국당은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를 통해 언론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미디어법을 만들었다고 밝혀온 터였다.


홍준표 대표의 고백(?)은 한국당의 속셈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 환경을 만들기 위해 MB의 최측근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하고, 미디어법을 날치기하고, 종일토록 편파·왜곡 방송을 일삼는 종편을 만들고,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 방송사를 자신들이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해왔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대놓고 딴소리다. 부당노동행위로 수많은 언론인들의 가슴을 후벼판 김장겸 사장을 비호하며 언론 자유와 방송의 공정성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을 '언론  파괴', ' 방송 장악 음모'라 왜곡시키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여기에 '강성노조' 프레임을 덧씌워 이 싸움을 노사문제로 격하시키려 한다. 참으로 저열하고 졸렬한 논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언론 자유와 방송 공정성을 훼손시키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건 다름 아닌 한국당이 아닌가.

모두가 알다시피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부당하게 해직당하거나 징계를 당한 언론인들은 한둘이 아니다. 정권을 비판하고 권력을 감시했다는 이유로, 부조리를 파헤치고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언론인들이 탄압받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리 없다. 더구나 처함하게 망가진 언론의 현실은 누구보다 언론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마이크와 펜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닌가.


한국당이 이제 와서 '언론 탄압'과 '방송 장악 음모'를 운운하는 건 뻔뻔스러움을 넘어 후안무치함의 극치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다. 정치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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