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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강경화를 외교부 장관에 임명해야 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 14일 국회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논의 의총으로 이날 오전 청문회가 정회되기는 했지만, 오후에 속개된 청문회는 덕담이 오가는 등 무난하게 흘러갔다는 평가다.

야당의 칼 끝은 확실히 무뎠다. 야당 모 의원의 입에선 "신상문제는 질문 안 하겠다"는 선언까지 나왔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야당 의원들의 사상 검증과 의혹 추궁이 잇따르기도 했지만 지난주 열렸던 청문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세간에 떠도는 '현역 의원 프리미엄', '현역 의원 불패 신화'의 위력을 체감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빛나는 동업자 정신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훈훈함이 아닌 '불편함'이다. 김부겸·김영춘·도종환 후보자와 김이수·강경화·김상조 후보자를 대하는 야당의 태도가 형평성과 공정성 면에서 올곧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역의원 출신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 추궁이 비의원 출신 후보자의 그것과 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직 후보자에게 제기된 도덕성 의혹은 현역의원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경중'이 가려질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부겸·김영춘·도종환 후보자의 자질이 공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김이수·강경화·김상조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을 분리해 대응하고 있는 야당의 태도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경화 후보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야당의 이중적 행태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속에는 야당의 일반적인 공세와는 다른 차원의 '무엇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강경화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임기 중 남녀 동수 내각 실현의 의지를 반영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동수 내각 구성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히 인적 구성 비율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질은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성평등'의 실현이다. 그러나 강경화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공세 속에는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의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성차별과 여성 비하적 인식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외교부 장관이 된다고 하더라도 얼굴마담에 불과할 것"(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 "많은 전문가 집단과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외교부 장관감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백승주 한국당 의원), "나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설득해보라"(원유철 한국당 의원), "안보 현안이 중요한 만큼,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민간 여객선 선장이면 몰라도 전시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수 없다"(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저 발언들이 의미하는 공통 분모는 하나로 모아진다. 강경화 후보자가 외교부 장관으로서 시쳇말로 '깜'이 안 된다는 거다. 여성이기 때문에 '얼굴마담' 밖에는 될 수 없을 것이고,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외교부의 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야당 의원들의 '편협함'이다. 특히 제 1야당의 원내대표인 정우택 대표와 같은 여성인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여성을 바라보는 형편없는 젠더 감수성을 가감없이 드러내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 오마이뉴스


강경화 후보자의 역량과 전문성은 이미 전직 외교장관들이 인정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외교부지부는 강경화 후보자가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유엔과 국제 금융기구에서 근무하는 국제기구 한국인 직원 60명의 지지선언도 나왔다. 실력과 인품에 대한 유엔에서의 위상 또한 남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 분야의 비전문가들이 강경화 후보자의 전문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국내외 외교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 강경화 후보자는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를 보다 효과적이고 창의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검증된 인사라는 것이 중론이다. 유엔에서 오랜 기간 고위직 활동을 하면서 쌓은 경험과 국제적 네트워크, 인맥 역시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공조를 높이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야당은 결사항전의 태세다. 검증 과정에서 일부 도덕적 흠결이 불거지자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낙마 사유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검증된 자질과 능력 역시 기준치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강변한다. 그보다 더 흠결 많고, 그보다 더 능력 없는 인사들의 고위공직 임명을 수없이 목격했던 이들에게 이 모습은 한편의 웃지 못할 소극이다.

강경화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능력과 자질 역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강경화 후보자를 향한 야당의 검증은 일반적인 공세와는 그 결이 다르다. 나는 '강경화 논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성차별 관행이 인사 검증이라는 과정을 통해 교묘하게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고,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그것이 아니라면 강경화 후보자에게 자행되는 여성 차별적 공세를 이해하기 힘들다.

세계경제포럼이 각국의 성평등 현황을 조사해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우리나라의 성 평등 격차는 조사대상 145개국 중 115위에 머문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부끄럽게 만드는 민망한 결과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난 2007년 97위, 2008년 108위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저급한 젠더 감수성이 우연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이면에는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성적 불평등과 억압 속에 노출되고 있는 것도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이 저급한 인식 때문이다. 어쩌면 강경화 후보자가 외교부 장관에 임명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자체가 성차별이 만연한 이 사회에 대한 전복이자 통렬한 일탈이지 않은가. 더 이상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등과 같은 차별적 표현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강경화는, 어디까지나 '강경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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