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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그 말

ⓒ 오마이뉴스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생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정확히 3년 4개월이 되는 날이어서 만남의 의미를 더했다.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문 대통령은 "늦었지만 정부를 대표해 머리 숙여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감정이 복받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끄러우면서도 기뻤다. 부끄러움이 한동안 세월호를 잊고 살았던 자괴감 때문이었다면, 여전히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돼서 기뻤다.

문 대통령이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그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안아주는 장면은, 대통령과 피해자 가족의 만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날 만남의 부제였던 '304명 희생된 분들을 잊지 않는 것,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의 사명'이란 문구처럼 국가의 존재와 역할을 진지하게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미수습자들 수습이 끝나면 세월호 가족들을 한번 모셔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는 중에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라고 초청 배경을 설명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의 만남은 문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늘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 그대로, 문 대통령은 정말 세월호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과 상처를 나누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왔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막기 위해 2014년 8월 열흘 동안 동조 단식을 벌이기도 했고, 특별법 제정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하지 않던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유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 직후, 정치인 중 가장 먼저 팽목항을 찾아 유족들의 손을 붙잡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던 것도 그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십분 활용해 유족들의 상처를 감싸안으려 애를 썼다. 문 대통령은 취임한 지 엿새 만인 지난 5월15일 업무지시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김초원, 이지혜 기간제교사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지시했다. 그동안 두 사람은 기간제교사라는 이유로 순직처리 인정이 안 돼오던 터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 이후 두 달, 사고가 발생한지 3년3개월 만인 지난달 7월5일 순직이 인정돼 유족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지난 5월12일에는 세월호 미수습자 관련 기사의 댓글에 '문변'이란 아이디로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현철이, 영인이, 은화, 다윤이,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 이영숙씨"등의 미수습자의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며 "돌 때 새 명주실로 놓을 걸, 한달이라도 더 품을 걸 후회하며 엄마가 지옥을 갈테니 부디 천국에 가라는 절절한 엄마의 마음을 담은 글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모두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늘 기억하고 있었다"는 표현 그대로, 그는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오마이뉴스


"목 놓아 울부짖어도 안 들여보내 주길래 철옹성인 줄 알았는데, 청와대도 그런 곳은 아니더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 앞 분수대와 인근 동사무소에서 아무리 '만나달라'고 빌어도 만나주지 않길래 청와대는 경비가 무척 삼엄한 곳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날 활짝 열린 청와대 문과 가족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을 보니 청와대는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었네요."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회다. 집권세력의 철학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보다 더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정말 그랬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집권하는 동안 유족들의 눈가는 마를 날이 없었고, 가슴이 무너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황망함에 빠져있던 유족들에게 박 전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비정하고 매정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보편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박 전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행태는 문 대통령의 강도높은 비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문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부는 사고 후 대응에 왜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것인지, 그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나 당연한 진상규명을 왜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했던 것인지, 인양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며 애통해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봤을 의문들이 문 대통령의 입을 통해 줄줄이 엮여 나온다. 노후한 선박의 운항부터 시작해서 사건 발생 후 연이어 벌어진 납득할 수 없는 장면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해경의 부실한 초동 대처와 정부의 안일한 상황인식 속에 흘러간 천금같은 시간들.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라는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짓밞은 정부여당의 무도함.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정부여당의 비협조로 허무하게 끝나버린 국정조사와 청문회, 특조위. 그리고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한 갖은 망언과 망동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마자 기적처럼 떠오른 세월호는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늘 기억하고  있었기에, 유족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을 터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설치를 천명한 이유 말이다. 유족들의 바람은 사고가 났을 당시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통해 의문들이 하나하나 속시원히 풀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온갖 모욕과 폄훼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 하나였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은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번에는 그 바람이 반드시 이뤄지기를. 다시는 이 땅에 저와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것만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과 지옥과도 같은 인고의 나날을 보내온 유족들에게, 국가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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