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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트럼프도 달라졌는데, 우리 '준표'는 아직도 색깔론과 씨름 중

ⓒ 오마이뉴스



한반도의 봄이 무르익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이루어진 급속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전쟁 위기설이 부각되는 벼랑 끝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실험으로 안보위기가 극대화되면서 한반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북한과 미국의 기싸움도 치열했다. 양국은 최고 수위의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자 북한은 "괌 인근을 목표로 화성 12형을 발사하겠다"며 맞대응했다. 그런가 하면 작년 8월 일본의 한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9월 9일 북한을 공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악화일로였던 한반도 상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초 신년사를 계기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혔고, 남북관계 역시 복원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평창동계올림픽에 김여정 특사를 파견했고,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김 의원장은 비핵화의 의지를 거듭 내비치며 미국의 대북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였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임을 강조하는 한편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 등의 선제적 조치로 미국의 의혹 어린 시선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열려있고 훌륭하다"고 평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북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대북압박이 강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기반과 여건을 조성했다. 또한 북핵 위기 등 숱한 위기와 보수진영의 날선 공세 속에서도 '한반도 운전자론'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인내와 용기가 이 드라마틱한 상황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한반도 운전자론의 핵심은 북미대화를 위한 중재외교에 방점이 찍혀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복원과 한미공조 유지라는 어려운 난제를 기가 막히게 풀어냄으로써 협상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창구로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이는 문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는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화제의 현장이 됐다. 눈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의 취재 열기 또한 뜨겁다. 35개국 187개 매체에서 한반도에 취재진을 파견했다. 외신 기자들의 수만 해도 900여명에 달하며, 국내 언론사까지 합할 경우 취재기자만 해도 무려 3천여명이다. 단일 행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국내외 언론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이번 회담이 한반도 상황에 미칠 영향과 결과를 예측하는 내용이다. 요약하면 두 정상의 만남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한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 역시 민족의 운명을 가늠할 남북 정상의 만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두 정상의 만남이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행태다. 외신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높은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한국당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는 탓이다. 한국당은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앞세워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깎아내리는가 하면 정쟁의 소재로 삼는 등 최근까지도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25일 정강·정책 연설을 통해 "3대에 걸쳐 무려 여덟 차례나 속임수 쇼만 벌였고, 자신들의 헌법에 '핵 보유'를 천명하고 있는 북한을 또다시 무작정 믿는다는 것은 바보가 할 짓"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깡패가 칼을 손에 쥐고 있든 주머니에 넣고 있든 나에게 상처를 입힐 위험은 똑같다"면서 "문재인 정권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참으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는 남북·북미정삼회담의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 종전 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청와대가 적극 검토한다고 밝힌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발전은 매우 무모한 발상이고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전 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져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홍 대표 특유의 '좌파 타령'도 이어졌다. 그는 "행정부와 사법부를 좌파 코드로 장악하고 국정을 주무르고 있는 장본인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 청와대 주사파"라며 "대한민국은 좌파에 의한, 좌파를 위한, 좌파의 국정이 펼쳐지는 좌파 폭주의 나라가 됐다. 이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체제로 변혁시켜서 좌파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홍 대표의 인식이 행간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사실상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홍 대표의 언행은,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외신들의 주류적 시각과 동떨어져 있는 데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의 인식과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버팀목인 미국마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몽니'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실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달 6일 북한이 전향적인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데 대해 "남북에서 나온 발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라며 "(남북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위대한 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관련 글을 게시하며 북미정상회담에 높은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세라 허커스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역시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최대 압박 활동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그들이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와 행동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북한의 전향적 태도 자체를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중국·일본·러시아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달리 보는 모양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그들만이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 보수표심을 자극하고 안보장사로 반사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분히 지방선거를 염두해 둔 행보일 테다. 남북 화해와 평화 정착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시대착오적 인식과 당리당략적 행태로 시커먼 재를 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8일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78.7%로 "반대한다"는 의견 14.5%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한다는 응답 비율과 한국당의 지지율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와 당대인들의 인식을 반영한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읽는 안목과 혜안이 절실하다. 정치정당이라고 어디 다를까.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국민 인식이 바뀌고, 심지어 트럼프까지 달라졌는데 한국당만 요지부동 과거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20세기의 낡은 통념과 관성을 고집하는 한 한국당의 반등은 기대난망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달라지지 않으면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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