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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빈민 아파트가 아닙니다, 청년 '희망' 아파트입니다

SNS를 통해 사진 한 장을 건네 받았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안에 붙여놓은 '안내문'이었다.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건'이라는 제목의 이 안내문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5평짜리 청년임대주택 신축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안내문은 아파트 가격 폭락, 공사에 따른 안전 문제, 교통 혼잡 발생, 소음·매연·수면방해, 일조권·조망권·주변환경 훼손, 슬럼화에 따른 아파트 이미지 손상, 아동·청소년 문제, 우범지역화 우려, 보육권·교육 문제 등을 나열하며 주민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다양한 이유가 적혀있지만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 신축을 반대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첫번째 항목에 있다. '아파트 가격 폭락'.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Money'다.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빈민아파트'라는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일종의 프레임이다. 

경제적 빈곤층이 거주하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슬럼화가 진행되고 범죄에 취약한 우범지대가 될 것이며, 결국 그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다. 집값 하락의 공포는 이렇게 억지와 왜곡, 망상을 마구 뒤엉켜 놓는다. 덕분에 청년임대주택에 살게 될 대다수 청년세대들은 졸지에 '빈민'으로, 지역의 우범화를 부추기는 잠재적 '문제아'가 됐다.  


ⓒ 오마이뉴스


빈민아파트 논란은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서울시 교육청이 2015년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 내에 건립할 예정이던 발달장애학생 직업능력센터는 인근주민과 중학교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로 여러차례 공사가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다. 결국 센터는 우여곡절 끝에 당초 예상보다 1년 가량 늦은 2016년 말이 되어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완공이 지연된 것은 지역주민들의 극심한 반대 때문이었다. 장애학생의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어가며 눈물로 간절히 호소했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장애학생들의 돌출행동에 의한 자녀들의 안전 문제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지역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구 경북대학교 주변 원룸촌 주민들은 최근 '경북대기숙사건립반대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경북대가 짓고 있는 1200명 규모의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대책위는 "기숙사 건립과 학생 수 감소로 인근지역에 빈 원룸이 4~5천 개에 이른다"면서 "앞으로 빈 원룸이 더 많이 생기면 주변 상가와 원룸주가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책위가 목소리를 높이는 반대편에는 주거비 부담에 등골이 휘는 학생들이 있다.  

2월 21일 국방부가 군인들의 외출·외박구역 제한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자 접경지역 상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상인들은 군인이 외출이나 외박을 할 때 소속 부대에서 일정 거리 내에 머물도록 하는 위수지역이 폐지될 경우 생존권이 무너진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접경지역의 비싼 물가가 불만이던 장병들과 부모들은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인들은 위수지역 폐지 철회를 촉구하며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다. 

발달장애학생 직업능력센터 건립을 반대했던 지역주민, 대학교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며 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원룸촌 주민, 위수지역 폐지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접경지역 상인, 그리고 청년임대주택 신축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 각기 다른 별개의 사안이지만 이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다.

청년임대주택은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청년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역세권에 토지를 소유한 민간업자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임대주택을 짓게 만들어서 사회초년생, 대학생, 신혼부부 등 청년세대들에게 공급하자는 취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사업으로 청년세대들은 주변 시세의 60% 수준으로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월 20~30만대의 임대료로 주거고통의 상당부분을 덜어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그러나 청년임대주택은 현재 지역주민들과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주민들은 청년임대주택을 저소득 취약계층이 주거하는 '빈민아파트'로 매도하는가 하면, 지역의 주거 안전과 교육 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년임대주택이 들어 설 경우 임대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자신들의 재산권과 생존권이 침해당할까 걱정하고 있을 뿐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나누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 오마이뉴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정작 '사람'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자리를 내 것을 지키려는 원초적인 욕망과 자본의 천박한 속성이 대신하고 있다. 착찹하고 씁쓸하다. 물론 잘 알고 있다. 현실에는 낭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각박함과 삭막함이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는 것을. 공동체의 이익과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식물은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는다. 안내문의 한쪽에는 "억지입니다. 그리고 공존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지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안내문이 화제가 됐던 건 투박하게 써내려간 이 손글씨 때문이었다. 집값 하락을 걱정하며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한편에는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환기시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청년임대주택은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청년세대를 위한 주거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해도 안 되는 현실 사이에서 매일 같이 사투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주거난을 덜어주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다섯 평은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이 작은 곳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처이자 내일의 삶을 위한 터전이 된다. 이 곳에서 그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또 미래를 설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 이 곳은 빈민들이 사는 아파트로 인식된다. 배금주의와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 승자독식의 1등 지상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사회,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그 뿐인 극단적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가 만들어낸 씁쓸한 단면일 터다. 


사람들은 가난의 척도를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나눈다. 그러나 나는 다섯 평 작은 공간에서 내일의 희망을 꿈꾸려는 사람들과 마음 한편이 차갑게 식어버린 사람들 중에서 누가 더 가난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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