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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목불인견이 따로 없는 한국당의 '개헌' 말 바꾸기

ⓒ 오마이뉴스


국회 주도의 개헌 발의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유한국당이 개헌 논의에서 사실상 발을 빼면서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기간 연장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날 회동은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10분 만에 자리를 뜨면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정 의장이 회동에 앞서 "개헌을 만약 별도로 국민투표 실시하는 것과 함께 실시하는 것의 비용 차이는 1227억이다. 개헌특위가 결론을 확실히 내겠다는 일정이 있어야 연장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염치가 없는 일"이라며 기간 연장에 난색을 표한데 이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이번 개헌특위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동시 투표를 분명하게 못을 박아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고 하자 김 원내대표가 강력 반발하면서 회동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 의장이 개헌 논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하면 국회 문을 닫자고 하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사전에 철저하게 청와대, 국회의장, 민주당이 충분한 각본을 가지고 6월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하지 않으면 논의를 접어버리겠다는 이런 작태가 제대로 된 국회냐"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고 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는 청와대와 정 의장,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의 입장을 요약하면, 개헌특위 기간 연장에 난색을 표하는 정 의장과 민주당 때문에 개헌 논의가 멈춰섰다는 주장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정 의장 말마따나 '염치'가 없어도 어쩌면 이리도 없을까. 불과 몇 개월 전 자신들이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 듯 해 버리니 국민을 '졸'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 대선에서 개헌이 대선후보들의 공통 공약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홍준표 한국당 후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홍 대표는 '지방선거-개헌투표' 동시 실시를 줄기차게 주장했고, 대선 이틀 전인 5월 7일에는 지방분권개헌 추진을 위해 결성된 모임인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와 지방분권개헌 국민협약까지 맺은 바 있다. 이 협약은 '지방선거-개헌투표' 약속을 문서에 직접 서명한 것으로, 개헌에 대한 홍 대표의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당의 개헌에 대한 열망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가 의결된 이후 한국당은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와 폐해를 집중 부각시키며 개헌의 당위를 역설하기 시작했다. 권력구조 개편에 방점을 둔 '원포인트 개헌'을 대선 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당의 주장은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론'이 부각되면서 더욱 비등해졌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으로 수권이 난망해지자 개헌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한국당은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인 3월 15일 국민의당·바른정당 등과 함께 대선 투표일 당일 개헌 국민투표 시행에 합의했을 정도로 개헌에 적극적이었다.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당시 개헌안에 3당은 대선 때 국민투표가 무산될 경우 '대선 후 1년 안에 국민투표를 한다'는 부칙 조항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당은 '지방선거-개헌투표' 입장을 견지해 온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선 개헌을 반대하고 있다며 맹공을 펼치기도 했다. '개헌 전도사'라 해도 무방할 만큼 열렬히 개헌을 주장해 온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랬던 한국당은 대선 이후 완전히 태도를 돌변했다. 대선후보 중 유일하게 개헌 약속 문서에 서명까지 했던 홍 대표는 지난 8월 17일 저녁 울산대공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헌법 개정이 상당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단번에 뒤집었다. 이어 11월 16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총회 특별강연에서는 "지방선거에서 곁다리로 투표하는 개헌 투표는 내용도, 형식도 맞지 않다"며 '지방선거-개헌투표' 반대 입장을 확고히 했다.

한국당 역시 지난 19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개헌 시기를 개헌특위 활동 기한 연장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당론을 모았다. 의총 직후 김 원내대표는 "개헌특위 활동 기간을 연장해서 개헌안 합의가 잘 되면 지방선거 이전에도 할 수 있고, 합의가 늦어지면 지방선거 이후에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지난 6월 말로 활동이 종료될 예정이던 개헌특위는 올해 말까지 이미 한 차례 기한을 연장한 바 있다. 기한 연장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한국당의 입장은 사실상 '지방선거-개헌투표'를 하지 말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정 의장과 민주당이 기한 연장을 하되 시기를 못 박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개헌에 목을 매던 한국당이 대선 이후 180도 입장을 바꾼 이유가 지방선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개헌으로 정국 주도권이 정부여당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 떨떠름한 데다가, 선거 열기가 뜨거워지면 투표율이 높아지게 될 테니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대선 전에는 상대방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해 개헌에 적극적이었던 한국당이 대선 후에는 지방선거를 의식해 개헌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조변석개() 한국당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만 하더라도 지난 대선공약이었던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등을 걸고 넘어지며 예산안 처리를 격렬하게 반대한 바 있다. 정치인의 말 바꾸기가 정치 불신과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는 구태 중의 구태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터다. 그런데 심지어 한국당은 말 바꾸기에 대한 책임은커녕 사과조차 없다. 이는 공당으로서의 본질적인 자격 문제다.


개헌특위는 지난 1월 5일 공식 출범했다. 87년 헌법 개정 이후 30년 동안 기본권 보장, 권력구조 개편, 지방 분권, 통일·경제 문제 등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고, 탄핵 정국과 맞물려 여야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합의에 이른 것이다. 개헌특위 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주영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1987년 헌법 개정 후 30년 만에 국회가 개헌 논의 중심기구로 개헌특위를 구성한 것은 정치사의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러나 개헌특위는 한 차례 기간 연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치권의 이해타산이 첨예하게 부딪히며 공전을 거듭해 온 탓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입장과 태도를 180도 바꾸는가 하면, 시기와 일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조차 없이 시간끌기에 급급하고 있는 한국당의 정략적 행태가 그 중심에 있음은 물론이다. 


여야가 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면 30년 만에 출범한 개헌특위 활동은 이달 말 종료된다. 그러나 본질은 개헌특위 기간 연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특정 정치세력의 표리부동에 있다. 한국당에게 김 원내대표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 "언제는 6월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하자고 하더니, 이제는 약속을 접어버리겠다는 이런 작태가 제대로 된 국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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