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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야당의 예산안 반대 이유, 알고 보니 대선공약

2018년 예산안의 법정 시한내 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시작된 이후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야는 법정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예산안 일괄 타결을 위해 마라톤 협상을 이어갔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야는 공무원 증원 예산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 지원자금 등의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 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4일 본회의를 열고 예산안 처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이 워낙 큰 탓에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 여야는 공무원 증원 예산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 지원자금,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남북협력기금, 도시재생 사업, 법인세·소득세 인상안, 누리과정 예산 등을 일괄타결하기 위해 접점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대한 여야의 철학과 입장이 서로 충돌하면서 파행을 거듭해 온 터였다.

야당은 특히 공무원 증원 예산과 일자리 안정 지원자금 등 핵심 쟁점을 사이에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한치의 물러섬 없는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왔다. 이와 관련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기자들에게 "공무원 증원 숫자를 놓고 합의가 어렵고 최저임금도 문제가 있어 도저히 합의가 어렵다"며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내 처리가 어렵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정부여당의 제시안인 공무원 1만2000명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2조9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 지원자금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산안 처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의제가 지난 대선 당시 여야 모두의 대선공약이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 증원의 경우 당시 홍준표 한국당 후보는 경찰과 소방 공무원 확충을 특별히 강조하며 경찰 인력은 1만명, 소방공무원은 연 3천400명씩  5년간 1만7000명을 증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2022년까지 사회복지담당공무원 1만3000명을 늘리겠다고 했으며,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역시 소방공무원을 중심으로 5년간 1만7000명 가량의 인력 충원에 나서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현재 6천470원인 최저임금을 1만원 가까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약집에 따르면 홍준표 후보는 최저임금 대상 계층인 서민과 청년들을 위해 최저임금을 임기내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고, 유승민 후보는 2020년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처럼 2020년이냐, 2022년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후보들은 저마다 최저임금 인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마이뉴스


그런데 불과 몇달 사이에 입장과 태도가 완전히 돌변한 것이다. 대선 전에는 부족한 "공무원을 증원시키겠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꾸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당시와 비교해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이는 달리 말해 주요 정책에 대한 공당의 입장이 야당이냐, 여당이냐에 따라 뒤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예산안 처리의 핵심 쟁점이었던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지난 대선 당시 대선후보들의 주요 공약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해 예산안이 법정 시한내 처리되지 못한 배경을 추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와 민생 문제 등 산적한 사회적 현안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정부 대책들과 지원 방향이 예산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또한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소득세 인상,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이 문재인 정부의 향후 국정운영 및 개혁 입법, 서민경제 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이유로 예산 확보는 문재인 정부의 과제와 정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쳇말로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순순히 예산안 처리에 합의를 하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과제과 정책 등이 무리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그 수혜는 고스란히 정부여당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맞서 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아나갈 방법이 점점 더 난망하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야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곧 야당의 불확실한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야당이 예산안 처리에 공세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일 터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29일 2018년 예산안이 포함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일자리와 복지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소득주도의 재정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의식한 성장주도 정책을 펼쳤다면,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바탕으로 일자리와 복지 분야의 지출을 늘리는 소득주도 정책을 통해 저성장과 양극화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일자리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핵심 쟁점을 담고 있는 새해 예산안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국정계획을 막힘없이 추진하기 위한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법정 기한내 처리가 무산되며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가 돼 버렸다. 여야는 4일 예산안 처리를 다시 시도할 방침이지만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워낙 극심해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오는 9일까지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가 표류되는 최악의 상황마저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다.

예산안 처리의 최대 쟁점은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 지원자금이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국민세금으로 부담지우려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야당 역시 지난 대선에서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금부담을 이유로 예산안 처리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야당은 최근 8급 보좌진 한명을 증원시키는 법률개정안을 처리한 데 이어, 국회의원 세비를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예산활용의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야당이 예산안 처리는 결사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이권은 빠짐없이 챙기고 있다. 현재 국회가 돌아가는 풍경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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