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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찰 수사결과 아전인수로 해석한 국민의당

오마이뉴스


"대신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네거티브 전략이다. 네거티브를 해도 역공을 당하면 안 된다. 자료를 항상 검증해야 한다. 터트려도 효과 있고 방어도 되겠다 하면 내놓고 방어는 어렵지만 효과가 있을 때는 책임선을 미리 만들어둔다. 이유미씨 자체가 카이스트 출신에 대기업 다니는 분이다. 아무리 안철수 후보 당선을 위해 자기 한 몸 바치겠다 생각했어도 혼자 기획했다고 보기 힘들다. 적어도 부추겼거나 보고를 받은 최소한의 라인은 있었을 것이다."

JTBC '썰전'에 새롭게 합류한 박형준 교수가 지난달 6일 방송에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 밝힌 내용 중 일부다. 지난달 31일 검찰은 제보조작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검찰의 발표 내용은 당시 박 교수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검찰은 제보조작이 이준서 전 최고위원의 제의를 받은 이유미씨에 의해 이루어 졌으며, 당시 공명선거추진단 수석부단장을 맡고 있었던 김성호 전 의원과 부단장이었던 김인원 변호사가 이 사건의 최종 '윗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 이용주 의원 등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박형준 교수의 표현을 빌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던 이유미씨를 부추겼고, 이를 보고받은 김성호 전 의원과 김인원 변호사가 제보자와 제보 내용에 대한 확인 없이 관련 사실을 '털컥' 공개해 버렸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준서·이유미'가 제보 조작을 기획·모의하고, '김성호·김인원'이 이 사건을 지휘한 셈이다.

검찰 수사 결과로 웟선의 개입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자 국민의당은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던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판단에서다. 제보조작 사건이 불거진 이후 관심은 온통 당 지도부의 개입 여부에 쏠려온 터였다. 특히 대선 후보였전 안철수 전 대표는 물론이고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36초간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박지원 전 대표, 지난 대선 당시 공명선거추진단장으로서 제보 검증의 총책임자였던 이용주 의원의 개입 여부에 시선이 집중돼왔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이 제보조작에 관여하거나 사전에 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모두 무혐의 처리를 내렸다. 당 지도부의 개입 여부에 따라 자칫 당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검찰 수사 결과에 안도하는 듯한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소집된 긴급 비대위·의총 연석회의와 그 직후에 열린 대국민 사과 자리에서다.

국민의당은 제보조작 사건이 불거진 데 대해 거듭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자신들 역시 제보조작 사건의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저희 당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국민의당은 당 진상조사위를 출범시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관련된 모든 당직자에 대해 철저히 진상조사를 해왔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의 개입이 없었다는 검찰 조사 결과와 자체 진상조사 결과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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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강하게 성토한 것도 국민의당의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다. 박주선 위원장은 추미애 대표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치풍토가 혁신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수사에 협력한 정당에 대해 조직적 범죄 집단이니, 지도부가 관련돼 있느니, 목을 잘랐느니 꼬리를 잘랐느니 하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없는 사실을 허구화해서 우리 당을 모욕했기 때문에 정치적, 법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며 날을 세웠다.

제보조작 사건을 일으킨 정당으로서 책임질 것은 떠안겠지만, 검찰 수사 결과로 당 지도부의 개입 의혹을 덜어낸 만큼 할 말은 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민주당에게 역공을 취하는 이 장면은 국민의당이 이번 제보조작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제보조작 사건의 핵심은 공당인 국민의당이 특정 후보를 떨어트릴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이를 위해 악의적으로 증거까지 조작했다는 사실에 있다. 각계에서 제보조작 사건을 가리켜 대의민주주의를 유린한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 손가락질 하는 이유다.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은 새 시대와 새 정치에 대한 사회공동체의 염원과 기대를 무참히 저버린 중대범죄다.

그런데 제보조작 사건에 임하는 국민의당의 행태는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그들은 시대착오적인 정치공작에 대한 반성대신 외려 준용씨에 대한 특검 주장을 펼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반성과 사과, 관련자 문책을 언급하면서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와중에 지난 대선 과정을 무한 책임져야 할 안철수 전 대표는 알맹이 없는 뒤늦은 사과로 적잖은 국민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번 검찰 조사 결과에 대한 국민의당의 반응 역시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검찰의 조사 결과가 국민의당이 원했던 최선의 결과일지는 몰라도, 그들이 조작된 증거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을 우롱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다. '윗선'의 개입이 없었다는 검찰 조사에 안도하기에는 지난 대선에서 공명선거추진단 수석부단장을 역임했던 김성호 전 의원과 부단장이었던 김인원 변호사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국민의당은 검찰 조사 결과가 마치 면죄부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저희 당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당이 진상조사로 밝힌 사안과 검찰이 밝힌 사실관계는 한치도 차이가 없다" 등의 발언들은 국민의당이 밝힌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거듭 고개를 숙이며 환골탈태하겠다고 천명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정치적·도의적 책임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의 행태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윗선의 개입을 밝혀내지 못한 사실에 취해 자신들이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얼룩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당 지도부는 조작된 제보를 가지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준용씨에 대한 네거티브에 '올인'했던 원죄가 있다. 설사 당 지도부의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고 해도 그들의 정치적·도의적 책임까지 희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달랑'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지지율,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공신력을 회복하려면 낮고 낮은 자세로 뼈가 부서지는 혁신 작업에 나서야 한다. 작금의 국민의당에겐 착각은 '독'이요, 한숨마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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