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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자폭탄 대처, 표창원과 하태경은 달랐다

ⓒ 오마이뉴스


국회의원을 향한 항의성 문자 메시지인 일명 '문자 폭탄' 문제가 결국 검찰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자유한국당은 21일 "지난 7일, 12일, 15일 세 차례에 걸쳐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문자 폭탄 153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이어 "의원들이 받은 수만 건의 문자 중 협박, 심한 욕설이 담긴 악성 문자만 추렸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 제59조와 70조, 공무집행방해죄를 규정한 형법 제136조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문자 폭탄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기는 국민의당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5일 '문자피해대책 TF'를 구성해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오는 28일 국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민의당은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문자 폭탄 관련 입법 발의에 나설 예정이다. 

국정농단 사태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한바탕 논란이 된 바 있는 문자 폭탄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후보자들을 향해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와 공세가 이어지자 여권 지지자들의 반박과 항의가 문자 세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문자 폭탄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주에 대한 심각한 도전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문자 폭탄의 위해성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과 관련해 이낙연 총리를 물건에 비유해 여권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 세례를 당했던 이언주 의원은 지난 5월29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문자 폭탄이 "표현의 자유를 넘어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어 지난 2일에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이언주 의원은 해당 인터뷰에서 이틀 동안 무려 만 통이 넘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으며, 그 중 80% 이상이 욕설과 협박성 메시지였다고 밝혔다. 지나친 욕설이나 비방, 협박 등이 포함된 문자 폭탄이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함은 물론 민주주의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정치적 의사를 직접 표현하는 것이니만큼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의사를 대리하는 국회의원에게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 반대편의 입장이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민의 표현 수단이 다양해진 것일 뿐 문자 폭탄은 과거 정치권에 불만을 표출하던 항의 전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자 폭탄이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표창원 의원은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해 일베와 친박 단체 등으로부터 수십만 건에 달하는 문자 폭탄 세례를 받은 경험이 있다. 훗날 그는 욕설과 비방 문자를 보낸 사람들에게 '보수의 품격' 등에 대한 문자를 재전송했고, 자신을 비난하던 상당수의 시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표창원 의원은 지난 5월28일 문자 폭탄에 대한 입장을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해당 글에서 "국민의 연락행위는 당연한 주권자의 권리"라며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등 인류 공동체 정치의 본질은 모두가 공론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이며 거대 국가의 탄생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간접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대표자들은 늘 자신이 대표하는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 총의를 모아 입법이나 정책 결정에 임해야 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이처럼 문자 폭탄을 바라보는 시선은 첨예하게 갈린다. "의회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 "비판을 용납치 않는 반민주적인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정당한 정치 참여의 한 방법",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야당의 법적 대응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문자 폭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법적 조치라는 물리적 수단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세간의 관심은 문자 폭탄이 과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로 모아진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해당 행위가 범죄구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4월8일 SBS라디오 '박진호의 시사 전망대'에 출연한 임제혁 변호사는 문자 폭탄이 특정인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개인이 특정 의원에게 문자를 상습적으로 발송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렬 전 판사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는 오히려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정렬 판사는 국민의당이 '문자피해 대책 TF'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하자 트위터에 "문자참여가 얼마나 정당한 행위인지 방어를 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국민을 고소·고발하는 것이 무고에 해당하면 역고소를 하는 것도 검토하겠습니다. 위축되지 마시고, 국민의 정당한 정치참여인 문자메시지 보내기를 더욱더 열심히 합시다. 주권자인 국민을 길들이려는 작태를 벌이는 자들의 버르장머리를 이번에 반드시 고쳐 놓도록 합시다"라고 밝히기까기 했다.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시를 정치권이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반면 해당 문자의 내용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문자를 받은 국회의원이나 그 가족에 대한 협박이나 신체·신변에 대한 위협이 포함돼 있을 경우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심한 욕설, 의원과 그 가족의 신변 위협이 포함된 문자 153건을 따로 추려 검찰에 고발한 것도 그에 대한 법률 검토를 이미 끝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자 폭탄이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관측과는 달리 야당의 법적 대응은 문자 폭탄과 관련된 법률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최순실 청문회 때 문자 폭탄 먼저 받아본 사람으로서 조언을 드리면요. 처음에 좀 성가시기는 하지만 며칠 지나면 적응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요즘은 문자가 너무 없어 문자폭탄이 그리워지기까지 합니다. 하루에 만개도 넘는 문자 폭탄 받을 때가 정치 전성기였습니다. 욕설을 넘어 살해협박 문자나 음성 메시지도 있었지만 실제 테러시도는 없었으니 큰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물론 욕설도 문제지만 살해협박을 보내는 분들은 좀 자중해주셔야 되죠. 그래도 문자나 음성으로 테러 협박하시는 분들 한번도 고소한 적 없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이언주 의원에게 건낸 문자 폭탄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유경험자답게 하태경 의원의 가이드 속에는 문자 폭탄에 대응하는 의원의 자세는 물론이고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당부까지 친절하게 설명이 돼 있다. 앞서 언급한 표창원 의원 역시 '멘탈갑'의 면모를 드러내며 문자 폭탄에 슬기롭게 대처한 바 있다. 시민과 싸우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야당과는 사뭇 다른 문자 폭탄 대처법이다. 

야당의 법적 대응으로 문자 폭탄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고소·고발이 이어진다고 해서 문자 폭탄이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민의 정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분출되고 있는 시대상에 비추어 이 흐름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이번 논란이 국회가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국회의원이 시민 감정을 자극하는 부적절한 언행을 보이거나,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일 때 시민은 그것을 비판하고 항의할 권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시민의 의사를 대리하는 국회의원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시민의 의견까지도 귀담아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야당은 표창원·하태경 의원이 시전한 문자 폭탄 대처법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시민의 권리와 국회의원의 책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