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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철수가 호남에서 외면 받은 이유

ⓒ 오마이뉴스


배낭 하나만 걸머진 '뚜벅이 유세'를 통해 막판 역전 드라마를 쓰겠다 공언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포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41.4%,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23.3%,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21.8%,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7.1%, 심상정 정의당 후보 5.9%. 

대선 투표 마감시간인 지난 9일 밤 8시 경, KBS·MBC·SBS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국민의당은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후보의 득표율이 예상보다 저조하게 나온데다, 홍 후보에게도 뒤지는 3위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여의도 헌정 기념관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은 일순간 깊은 적막에 휩싸였다. 박지원 대표와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소속 의원들과 캠프 관계자들은 충격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앙다문 모습이었다. 그 시각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는 기쁨과 환호의 탄성이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국민의당의 분위기는 본격적인 개표가 시작되면서 더욱 무거워졌고 침울해졌다. 혹시나 했던 출구조사 예측은 이번에는 틀리지 않았다. 오차범위 내에 있던 안 후보와 홍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는 출구조사 예측보다 조금 더 벌어졌다. 최종 득표율 21.4%. 안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문 후보(41.1%)는 고사하고 적폐세력의 후보라 비판받던 홍 후보(24.0%)에게도 밀렸다. 안 후보로서도, 국민의당으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인 결과다.

그러나 국민의당을 '멘붕'에 빠트린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당의 근거지이자 존립기반이라 할 수 있는 호남지역에서 받은 안 후보의 충격적인 득표율이다. 투표 결과 안 후보는 호남지역에서 문 대통령에게 압도적으로 밀렸다. 호남의 상징인 광주는 물론이고 전북과 전남에서도 더블스코어로 뒤졌다. 심지어 안 후보는 호남지역 전 지역을 통틀어 승리한 지역이 단 한 곳도 없다. 국민의당이 초상집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알다시피 국민의당은 지난 2016년 초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호남지역의 비주류들과 안 후보가 힘을 합쳐 만든 정당이다. 창당 초기 철학과 노선 등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던 국민의당은 참여정부의 '호남홀대론'과 '반문정서'를 앞세워 호남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2016년 총선에서 광주 8석을 싹쓸이하는 등 호남 의석 28석 중 23석을 차지하며 당당히 원내 3당의 지위를 획득했다.

국민의당은 총선 이후 승승장구했다.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을 앞서는가 하면, 안 후보의 대선 지지율 역시 가파르게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캐스팅보터로서 민주당과 새누리당(현 한국당) 사이에서 원내 3당의 지위를 확실히 뿌리내리는데 성공했다.

신생 정당의 한계와 창당 초기의 정체성 논란을 극복하고 국민의당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의당의 현재이자 미래이며, 심장과도 같은 지역이 바로 호남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안방이라 믿고 있었던 호남에서 국민의당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것도 단 한 지역도 이기지 못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다.


ⓒ 부산일보


호남의 맹주로 자리잡던 국민의당이 지역 민심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호남지역 정서에 역행했던 안 후보의 정치 행보와 극단적인 네거티브를 고집한 국민의당의 전략적 실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표를 의식한 안 후보의 노골적인 우클릭 행보는 당의 지지기반인 호남과 중도·진보 유권자의 이탈을 부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 후보는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햇볕정책에 대해서 오락가락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대북정책과 안보관에서 국민의당과 안 후보 사이에 엇박자가 나는 등 안정감과 신뢰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안 후보와 국민의당이 선거 기간 내내 네거티브에 주력한 것도 지지율 하락의 주된 원인 중의 하나라는 지적이다. '반문정서'에 함몰된 네거티브 공세는 구태 정치의 재판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선거 막판에 이를 때까지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에 대한 의혹을 집중 공략하는 등 성과 없는 네거티브에 헛심을 쏟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결론적으로 안 후보와 국민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자신들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새정치의 참신함을 전혀 부각시키지 못했다. 안철수 바람의 핵심인 새정치 대신 정치공학에 얽매인 과거의 낡은 정치를 답습한 것이 호남지역의 민심을 얻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선 패배와 호남지역의 민심 이반으로 국민의당의 미래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당내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던 안 후보의 한계가 이번 대선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데다, 피해갈 수 없는 대선 패배 책임론이 당내에 몰아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당안팎에서는 당 지도부와 호남의원들을 향한 비판이 비등해지고 있다.

그동안 국민의당은 '안당', '호남당'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아왔다. '안철수'가 당의 구심이라면 '호남'은 당의 존립 이유다. 그런데 이번 대선으로 국민의당은 당의 구심인 '안철수'와 당의 존립기반이자 근거지인 '호남지역'을 모두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번 대선이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의 전초전 성격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뼈아픈 결과다.

안 후보와 국민의당은 이번 대선에 자신들의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후보는 '강철수'가 되기 위해 목소리까지 바꿨고, 국민의당은 보수표를 얻기 위해 호남지역의 '역린'마저 건드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돌아온 것은 대선 패배의 쓰라림과 호남지역에서 확인된 살 떨리는 민심 이반이다. 국민의당은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풍전등화요, 진퇴유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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