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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준표는 왜 소금 세례를 받아야만 했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 9일 경남도지사직을 사퇴했다. 황당한 것은 그가 이날 자정을 3분 남겨둔 시점에 사퇴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홍 후보가 보궐선거를 무산시기키 위해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선거의 선거일 전 30일까지 실시사유가 확정된 보궐선거 등은 대통령선거의 선거일에 동시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의 장이 궐위된 때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직무를 대행하는 자가 당해 지방의회의장과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에 이를 통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궐선거가 치뤄지기 위해서는 홍 지사의 도지사직 사퇴 이후 직무를 대행하게 될 경남도 행정부지사가 9일까지 사퇴 사실을 경남도의회 의장과 경남도선관위에 알려야만 했다. 그러나 홍 지사는 9일 밤 11시57분경이 돼서야 지사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이 사실은 다음날 오전에 경남도선관위에 통보됐다. 원칙대로라면 5월9일 열려야 했던 경남도 보궐선거는 이렇게 무산됐다.

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전부터 홍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더라도 사퇴 시한을 최대한 늦춰 도지사 보궐선거가 열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터였다. 홍 후보는 지난달 20일 경남도청 도정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대통령선거 본선에 나가기 직전 사표를 제출하면 보궐선거는 없다. 보궐선거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내가 한달 전부터 이야기했다"며 보궐선거에 대한 강한 부정의 뜻을 나타낸 바 있다.

홍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내가 사퇴하면 자치단체장 중에서 도지사 나올 사람이 사퇴하고, 그 자리에 또 들어갈 사람이 사퇴해서 줄사퇴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쓸데없는 선거비용 수백억원을 더 부담하게 된다. 내가 보건대, 경남도정은 행정부지사 체제로 가더라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궐선거를 반대하는 이유가 지자체장의 줄사퇴로 인한 도정의 혼란을 막고 선거비용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홍 지사는 10일 오전 10시 경남도청 대강당에서 열린 도지사 퇴임식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도지사 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기초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의 줄사퇴가 이어지고, 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연쇄사퇴가 불가피하다. 300억원의 혈세 낭비와 혼란이 있게 되고, 도민들은 제대로 검증도 못 해보고 도지사나 시장·군수를 뽑아야 한다. 도정은 세팅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권한대행체제로 가도 도정공백은 없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내년 6월에 도지사를 선출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홍 후보의 발언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같은 논리라면 도정을 내팽개치고 대선에 출마한 그부터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도정공백과 혼란을 유발시킨 당사자는 홍 후보 자신이기 때문이다. 보궐선거를 둘러싼 혼란은 그의 대권욕이 만들어낸 이유있는 논란이다. 그럼에도 그는 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지자체장의 줄사퇴가 이어져 도정이 마비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무책임할 뿐더러 군색하기 짝이 없는 항변이다. 


보궐선거를 비용문제와 연계시킨 것도 부적절하다. 보궐선거의 의미를 단순히 비용적인 측면으로 계량화할 수는 없는 탓이다. 게다가 실제 선거 비용은 300억원이 아니라 약 120억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홍 후보가 경남도지사로 당선됐던 지난 2012년 12월19일 보궐선거의 경우 약 118억원 가량의 선거 비용이 소요됐을 뿐이다. 따라서 홍 후보가 언급한 300억원은 선거 비용을 '뻥튀기'한 측면이 강하다. 


기실 비용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국민의 참정권과 지방자치제도의 취지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홍 후보의 잔여 임기는 15개월 가량이다. 이와 관련 중앙선관위는 이미 '잔여 임기가 1년 이상 남았을 때는 보궐선거를 하는 것이 공직선거법의 정신'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홍 후보는 이를 무시하고 보궐선거를 무산시켜 버렸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제도의 근본 취지를 짓밟은 것으로, 법률이 정하고 있는 선거제도와 지방자치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전횡이자 폭거다. 


홍 후보가 보궐선거를 무산시킨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야권에 유리한 선거 국면상 보궐선거에서 한국당 후보가 당선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약 보궐선거가 치뤄지면 도지사직은 물론이고 출마를 한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의 자리마저 야권으로 넘어갈 공산이 커지게 된다. 보궐선거 과정에서 불거질 이슈들이 대권에 불리하게 작동할 것을 우려한 측면도 있다. 또한 대권 이후 경남도에 계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장기적인 포석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홍 후보가 보궐선거를 무산시킨 것은 국정공백이나 비용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같은 정치공학적 이해타산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홍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 체제는 절차와 과정을 지키려는 사회구성원의 수고와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꽃피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부터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허투루 여기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홍 지사는 그동안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권위주의적 도정 운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 왔다. 그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진주의료원과 무상급식 문제를 도민과의 어떠한 논의나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폐업·폐기시킨 전력이 있다. 이번 보궐선거의 무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홍 지사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행태가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0일 열렸던 퇴임식에서 홍 후보는 감정이 복받친 듯 눈물을 흘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감정이 복받친 사람들은 비단 홍 후보 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도민들은 보궐선거를 끝내 무산시킨 홍 후보를 향해 소금 세례를 뿌리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도민의 주권을 무시한 홍 후보의 월권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표현일 것이다. 국민의 참정권을 왜곡하고 건강한 지방자치제도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태는 배격돼야 마땅하다. 국민은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는 인식과 철학을 지닌 지도자를 가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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