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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민주당의 진짜 적은 '민주당'이다

ⓒ 오마이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참여 신청이 뜨겁다. 모집 첫날인 15일, 참여 신청자가 폭주하면서 서버가 일시 다운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첫날에만 30만명이 넘는 신청자가 나오면서 선거인단 수는 당초 민주당 측이 예상했던 2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인단 모집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3일 전까지 계속되는데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상기된 표정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으로 보수진영이 괴멸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경선 흥행몰이를 통해 대선 경쟁에서 확실한 우세를 굳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각 후보별로 선거인단 모집 경쟁이 뜨거운 민주당과는 달리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아직까지 경선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폭발적인 선거인단 참여 신청이 꼭 민주당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비민주당 지지세력이 특정 주자를 떨어트리기 위해 이른바 역선택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실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 참여가 시작된 15일, '박사모', '일베' 등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후보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역선택의 우려는 민주당이 '완전국민경선'을 대선 룰로 정하면서 예견됐던 부분이다. 민주당은 당원 자격과 상관없이 일반 시민들도 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완전 개방했다. 참여방법 역시 현장 서류 접수(신분증 제출), 전화 접수(주민번호 및 인증번호 입력), 온라인 접수(범용공인인증서 또는 금융기관용 공인인증서) 등으로 아주 손쉽다. 그로 인해 비민주당 지지세력이나 비문재인 지지자들이 언제든 역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민주당이 경선 흥행 조짐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우리가 경선할 때마다 역선택 소지가 있다는 분들이 계신데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진영의 선거 결과를 왜곡하기 위해서 수고를 기울이고 공작할 분들이 아니다"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역선택 가능성을 일축했다. 역선택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역량과 의식을 믿고 경선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우 원내대표의 인식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민주당이 역선택 문제보다 더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민주당 대선 경선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대세론은 양날의 검이다. 김빠진 승부가 이어진다면 본선에서 크게 고전할 수도 있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이회창 대세론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치뤄졌다. 이회창 후보의 일방적 독주 속에 최병렬·이부영 후보 등은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고, 한나라당 경선은 결국 흥행에서 참패했다. 그해 대선의 승자는 민주당 경선 돌풍의 주역이었던 노무현 후보였다.

2002년 한나라당의 실패는 민주당에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선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치뤄진다면 정작 본선에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선거인단 참여 신청에서 확인된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약진이다. 이재명 성남지사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가운데 안 지사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안 지사의 가파른 상승세는 민주당의 숙제인 경선 흥행을 위한 청신호다. 대세론에 안주할 수 있는 문 전 대표 측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한편 문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후보 진영 간 도를 넘는 경쟁 역시 경계해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4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의 수혜를 입은 탓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민주당을 사분오열하게 만들었던 당내 계파갈등이 수그러진 것도 지지율 상승의 요인으로 꼽힌다. 

극심한 당내 계파 갈등은 대중의 정치 혐오와 불신을 부추기는 원인 중의 하나다. 그동안 민주당은 주류와 비주류 간의 치열한 당내 갈등으로 깊은 내홍에 시달려왔다. 그런데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비주류가 집단 탈당하면서 당내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사라져버렸다. 당내의 불협화음이 없어지자 민주당은 총선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그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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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지난 2015년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펼쳐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경선에 뛰어들었던 문재인 후보와 박지원 후보는 도를 넘는 설전으로 국민들의 눈쌀을 지푸리게 만들었다. 막말과 인식공격 등 진흙탕 싸움이 계속됐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봉합하기 힘든 극심한 갈등과 분열에 휩싸여야만 했다. 그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떻게 갈라졌는지는 모두가 안다. 대표 선출 이후에도 계파 갈등은 계속됐고 결국 당은 쪼개졌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의 실망과 피로감 역시 극에 달했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경계해야 할 부분은 자만이다.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은 범여권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정의당을 합친 것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파죽지세다. 당 분위기 역시 자신감이 넘쳐난다. 대선 승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확신이 당 내부에 가득하다. 누가 후보가 돼도 이길 수 있다는 장미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도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변수가 터져 나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탄핵 정국으로 대선시계가 빨라졌다고는 하나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탄핵 심판이 어떻게 결론날지도 미지수다.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새누리당의 참패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새누리당 내부의 자만과 오만도 빠질 수 없다. 당시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에 따른 선거환경을 지나치게 낙관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민심의 향배를 쫒는데 실패했다. 친박 패권주의의 전횡 속에 공천 파문과 옥쇄 파동 등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졌지만 정작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했다. 야권 분열로 무난히 이길 것이라는 자만이 당내에 퍼져있던 탓이었다.


현 상황은 여야의 입장이 뒤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당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외려 민주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이라는 '꽃놀이 패'까지 있다. 두 번의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 또한 가열차다. 이에 당안팎에서 지려야 질 수가 없는, 해보나 마나한 승부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선거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예측불가의 대결이다. 대선판을 뒤흔들 변수가 돌출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보수세력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보수진영의 결집 속에 막판 대혼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민의당과의 경쟁 및 관계 설정도 무시 못할 변수다. 대선의 역동성을 감안해 본다면 결과를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형세가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민주당이 넘어야 할 산 역시 만만치 않은 탓이다. 경선 흥행을 이끌어내야 하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질 후유증도 최소화해야 한다. 지난친 낙관과 확신이 초래할 자만과 방심도 경계해야 한다. 촛불민심에 녹아있는 사회 대개혁 의제를 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탄핵 심판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당이 진짜 걱정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당면 과제들이 이처럼 산적해 있는 것이다.

선거인단 모집을 시작으로 대선 여정에 닻을 올린 민주당에게 냉철한 현실 인식과 지혜,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가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당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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