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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보수(保守)를 보수(補修)할 수 있을까

ⓒ 오마이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는 한 개인의 대선 중도 포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보수진영에게 있어 그의 퇴장은 뼈아프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반 전 총장에게 구애를 보내온 보수진영은 직격탄을 맞았다. 반 전 총장의 대체제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은 보수진영이 직면한 심각한 위기를 방증한다.

2월 1일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JTBC의 의뢰로 실시한 여야 대선주자 지지도에 대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6.1%)와 황 권한대행(12.1%), 안희정 충남지사(11.1%)가 1~3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재명 성남시장(9.9%)과 안철수 의원(9.3%)이 쫓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보수진영은 암담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새누리당은 후보조차 내지 못한 채 외부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바른정당 역시 유승민 의원(4.3%)과 남경필 의원(2.0%)이 각각 6위와 8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두 정당이 반 전 총장 영입에 공을 들여온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보수진영은 87년 체제 이후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했던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져온 보수의 계보가, 그 굳건했던 아성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두 번(1997년, 2002년)의 뼈아픈 실패와 피 말리는 아슬아슬한 승부가 이어진 적은 있었어도, 이번처럼 일방적인 열세 속에서 대선을 치르는 경우는 유례가 없었다. 작금의 상황은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보수진영의 명백한 위기다.

상상이나 했을까. 그 누구도 보수진영이 이렇게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권위주의적 국정운영 속에 권력형 부정 비리와 민주주의의 퇴행이 속출하자 보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회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박근혜 정권은 낯뜨거운 보수의 민낯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사회공동체를 공분케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16년 4월 총선이 보수진영에게는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야권은 총선을 앞두고 분열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었고, 급기야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갈라서면서 총선 필패의 암운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였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180석도 가능하다는 장미빛 전망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의 참패였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써내려간 반전의 드라마에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를 야기시킨 극심한 패권 싸움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비루한 근성을 버리지 못했고, 총선 이후 반짝했던 개혁과 혁신의 목소리 역시 이내 사그라들었다. 총선에 담긴 민의를 살피지 못한 채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는, 패권주의에 찌든 도로 '식물 정당'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의 '몰락'은 그 즈음에 이미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새누리당이 총선 패배의 원인인 친박 패권주의와 단호히 결별하고,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을 견제하며 불투명한 인사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득권에 안주하며 해묵은 관성을 탈피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며, 새누리당의 분당이다. 여기에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는 초라한 현실이 '덤'으로 주어졌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보수의 적자를 다투고 있는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이나 만감이 교차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 오마이뉴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의 목표가 이번 대선에 맞춰지는 한 그들이 체감하고 있는 보수의 위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보수의 위기를 초래한 본질적 원인에 대한 성찰의 문제다. 왜곡되고 변질된 '보수적 가치'를 바로 잡고 회복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비난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보수를 지향한다는 그들은 실제로는 보수적 가치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

보수가 지켜야 할 보수적 가치의 핵심은 '헌법'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로 시작되는 헌법이야말로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 중 으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집권기간 동안 외려 헌법 가치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들의 전횡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어디 이뿐인가. 심지어 저들은 헌법전문에 나와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마저 부정하고 있다. 국정교과서와 건국절 논란은 저들이 내세우는 보수적 가치가 얼마나 왜곡되고 변질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수진영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결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작금의 위기는 '가짜 보수'가 보수적 가치를 왜곡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사이의 '진짜 보수'를 둘러싼 선명성 경쟁은 아주 흥미롭다. 관건은 역시나 그 내용에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보수 정당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법 가치'에 대한 수호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보수의 가치조차 지켜지 못하면서 '보수'를 자처하는 것은 후안무치할 뿐더러 기만이며 위선일 뿐이다.

대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에게 보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진정성이 있다면 대선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대선을 일그러진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적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려울 때일 수록 정도를 밟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불법과 부정, 편법과 꼼수는 보수의 몰락을 부추긴 주범이다. 쉬운 길, 편한 길은 단호히 거부하고 가시밭길을 자청하라. 무너진 보수를 재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해답이 바로 그 곳에 있다. 이념과 지역에 의존하는 구태를 벗어던지고, 보수(保守)를 보수()하라. 그 길 외에는 백약이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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