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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월호 잠수사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세월호 참사와 온 국민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메르스 사태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에서부터 사건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까지 두 사건은 묘하게도 하나로 겹친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피해를 키웠다는 점도 동일하다.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똑같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정부 책임은 당일 현장 책임자인 123정장에게만 물었을 뿐 상황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목표해경, 서해청장, 경청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측 인사는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주부무서 책임자였던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은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됐다.

이 모습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를 대신해 생존자 수색과 희생자 주검 수습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민간잠수사들이 훗날 과실 책임으로 검찰에 기소되고, 메르스 환자 진료에 여념이 없던 일선 병원과 의료인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전염병 관리 책임을 떠안아야 했던 장면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사람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고 있는 모습. 한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만 같다.

대한민국에서 이같은 부조리극은 흔한 일상이 됐다. 멀게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투사들의 삶이 그럴 것이고,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자 수색과 희생자 수습에 몸을 사리지 않았던 민간잠수사들이 그럴 것이다국가를 위해 타인을 위해 제 몸 돌볼 틈이 없었던 그들의 삶은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만큼 비참하다. 그들 모두는 이 부조리극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다



ⓒ 오마이뉴스



지난 17일 새벽 운명을 달리한 김관홍 잠수사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9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민안전처 국정감사 당시 참고인으로 출석해 "극도의 공포 속에 엉켜 있는 희생자들의 주검을 한 구 한 구 달래가면서 안아 올렸다"며 울먹이던 김관홍 잠수사가 자택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소주병과 약통, 지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등으로 미루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입었던 신체적 외상과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유증으로 본업인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낮에는 아내의 꽃가게 일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민간잠수사로 인정받지 못해 구호비용을 지급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육체적·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시신 수습 과정에서 느꼈을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소신과 양심에 따른 행동이 왜곡되는 현실, 민간잠수사에 대한 정부의 비상식적인 처우, 살인자 취급까지 받아야했던 동료에 대한 울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정부 관료에 대한 분노,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회한, 무리한 잠수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외상, 그리고 여기에 경제적 고통까지 더해져 그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세월호를 멀리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소식을 SNS에 발빠르게 공유하는가 하면 지난 총선에서는 '세월호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수행비서를 자처하며 선거 운동에 발을 벗고 뛰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상할대로 상한 육신과 영혼으로 그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몸을 사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여기까지 오도록 만든 동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참고인으로 참석했던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돈을 벌려고 간 현장이 아닙니다.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라고 부르짖으며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양심 때문이라는 것을. 양심이 없었어야 했다. 만사를 제쳐두고 참사 현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양심, 그 양심이 그를 스러지게 만든거다. 양심이 없었더라면, 다른 사람들처럼 뻔뻔하고 무책임했더라면, 그는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지인으로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을 것이다.


ⓒ 오마이뉴스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점점 양심과 정의, 원칙과 소신, 상식을 따르는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국정원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거치는 동안 이 사회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정의와 양심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라고, 외면해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가 가르쳐주는 처세술에 순응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신념에 따라 양심에 따라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김관홍 잠수사가 그럴 것이고, 끝까지 선체에 남아 승객들을 구조하다 숨진 '세월호 의인' 5명이 또한 그럴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불의가 득세하는 시대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의인이고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을지라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이름과 의로움은 반드시 기억해 두자. 그것이 양심에 따라 신념에 따라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김관홍 잠수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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