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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희망이라 쓰고 절망이라 읽는 그들, 비정규직

시간이 꽤 지난 일이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 2 25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마련된 '희망의 나무'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미리 접수한 국민의 희망 메시지가 담긴 365개의 복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중 3개를 골랐고, 그 두번째 복주머니에는 서울에 산다는 집배원 박형동씨의 사연이 적혀 있었다. 복주머니 속에는 '우정사업본부는 비정규직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정부기관입니다. 비정규 상시 계약 집배원들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시길 부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임기 내에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고 밝히며, 임기중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보였다박 대통령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나타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지난 대선기간 동안에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 문제는 100% 공감하는 일이다. 비정규직이라서 억울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 2012 0 22일 한국노총 방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담겨져 있는 '희망 복주머니'를 선택한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연출된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박근혜 정부 들어 시간제 일자리가 크게 증가했고, 고용불안과 저임금 고용형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해법은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내세운 비정규직 공약들은 노동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경제전문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바 있다특히 경실련은 당시 박근혜 후보의 비정규직 해소 공약에 대해서 '공약의 목표와 방향에 부합하는 구체적 실행계획이 부족하다'라는 평가를 내렸다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벌어진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약집에 담겨져 있기는 하나, 정책 목표도 모호하고 개별 정책 실행 방안도 막연하게 표현되는 등 전체적으로 부실하다고 지적을 받은 것이다




 

경실련은 이와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도 공약에는 '비정규직 비율을 OECD 평균인 25% 수준까지 낮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구체적 방법이나 내용이 빠져 있는 상태라며 공약의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의 비정규직 공약에 대해 노동계 역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했던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을 전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실행여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특히 노동계는 '사내하도급 보호법이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인권위원회가 그 위험성을 경고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특수고용직의 경우 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250만명에 이르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둔 노동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계와 경제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실현 방안이 막연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보다는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공약실현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평가했다

 

 


 

"노공계의 큰 현안 중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로 당은 이 문제를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확고한 실천 의지를 갖고 있다" (2012 3 25일 울산방문 현장에서)

 

지난 2012년 총선에서도 박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새누리당과 자신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총선과 대선, 그리고 취임식에서까지 연이어 강조했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박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는 실로 대단해 보였다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그의 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약 두 달이 흐른 시점에 국회 정론관에서는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원회 유기홍 의원과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의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2013 1 25일부터 약 한 달간 전국 초중고 11천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실태조사의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전체 계약해지자 6475명 중 기간제 근로자가 5537(82.7%)이고, 무기계약자도 1118(17.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가운데 4635(72%)이 본인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해고를 당했다. 해고된 679(61%)의 무기계약자 역시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약이 해지되었다


해고 당한 기간제 근로자 중 박 대통령이 총선 유세에서 언급했던 상시·지속적 업무자가 무려 5128(92.6%)에 달한다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노동계를 향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구애의 손길을 내밀더니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일선에서는 해고의 칼바람이 일었던 것이다




 

대통령 취임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벌어진 비정규직 대량 해고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토대로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4 3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33.3%인 약 591만명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노동계가 파악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이와는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포함시키지 않은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 중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들까지 포함시킨다면 비정규직의 규모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1000만에 달하는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혁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집념이 참으로 대단하다. 정부가 개혁하려는 노동현실 속에 비정규직의 자리는 어디쯤 될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노동계와 경제전문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면치 못했던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그보다 더 치밀하고 강도높은 '노동시장 구조개편'으로 이어짐으로써 비정규직의 미래가 더 암울해졌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시간제 일자리 늘리기, 35세 이상 기간제 사용 연장과 55세 이상 파견 허용 업종 확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정규직 해고조건 완화 등은 평생 비정규직 시대의 도래가 눈 앞에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취임식 이후 박 대통령은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행사에 참석했다그 곳에서 그는 나무에 달려있는 형형색색의 복주머니 중에 하나를 골라 들었다그 안에는 자신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비정규직의 간절한 염원이희망이 적혀 있었다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이날 박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에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임기 내에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의 화답은 평생 비정규직 시대를 여는 노동개악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 나라는 무려 100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다.  화사한 옷을 차려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박 대통령이, 매일매일 처절하고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의 삶을, 하얀 종이 위에 '희망'이라고 쓰고 '절망'이라 읽는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는 정말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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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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