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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한열의 운동화는 다시 복원될 수 있을까?

낡아도 너무 낡았고 닳아도 너무 닳았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속에 담겨있는 아득한 사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손만 닿으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헤질 대로 헤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운동화, 그것도 달랑 짝만 남아 있는 운동화의 보존가치는 얼마나 될까. 상대적인 것이기에 전혀 가늠할 없는 일이다.

운동화는 많이 주어도 출시된 지 30년이 지나지 않았다. 30년은 골동품이나 유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에어 조던'시리즈의 한정판이나 된다면 모를까 이름도 없는 (심지어 모기업조차 망해버린) 회사의 제품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러나 운동화의 주인이 이한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한열이 역사적인 순간에 신고 있었던 운동화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1987 6 여름은 아주 뜨거웠다. 거리와 광장은 '독재 타도' '호헌 철폐'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의 서글 퍼런 철권통치에 맞서기 위해 거리로 밀려 나왔고, 자리에 이한열도 함께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살에 불과했다. 6 9 그는 전두환 정권 규탄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이 최루탄에 뒷통수를 맞았다. 당시 이한열이 피를 흘리는 장면은 국내는 물론이고 외신의 해외토픽에까지 소개되면서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를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은 시민들의 분노를 극에 달하도록 만들었다. 더욱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전두환 독재정권을 규탄했고, 마침내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역사적인 '6.29선언' 이끌어 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7 5 이한열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7 9 이한열의 장례식에는 서울에서만 무려 100만의 인파가 운집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던   여름대한민국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6 항쟁의 정점에 바로 이한열이 있었다. 이한열은 알고 있었을까. 그의 죽음이 갖게 될 숭고한 역사적 의미를.





정점은 꼭대기를 의미한다. 이한열이, 그리고 수만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독재, 불의, 부정같은 거악에 맞서 저항했던 87 6월의 뜨거움은 이후 땅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론 시민들은 여전히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 정권의 부당함과 부정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때때로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국정원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같은 이슈만 보더라도 시민들은 여느 때와 같이 분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87 여름의 뜨거움에 비하면 이는 지극히 소박한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


나는 시대에 따라서, 세대에 따라서 거악에 맞서는 시민들의 분노의 크기와 밀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흐름은 더없이 이상하기만 하. 불의의 한폭판에서 정의를 외쳤던 87년의 뜨거움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그 30여년의 세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명박 정부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그러나 그 우려가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는 땅의 민주주의가 실상 얼마나 허약하고 볼품없는 것이었는지, 빈약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는지를 똑똑히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이한열이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루어 내려고 했던 민주주의가 고작 이런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씁쓸한 일이다.





나는 산산조각이  이한열의 운동화가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땅의 민주주의는 이한열의 운동화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그나마 남아있는  쪽마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이는 독재권력으로부터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해 내며 형식적 민주화에 만족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넣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정의 숭고함 못지 않게 성취의 결과를 계승 발전시키는 역시 중요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정의 숭고함에 걸맞는 이후의 태도와 역량을 갖추질 못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혼란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떤 사물이 그저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운동화를 신발장 안에 두면 내내 상태로 남을 거라 여기는 거죠. 운동화처럼 역사성을 지닌 사물은 애써 관리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김겸 박사


87 여름을 뜨겁게 만들었던 이한열의 운동화가 복원되려 하고 있다. 땅의 민주주의도 그와 마찬가지로 다시 복원될 있을까. 산산조각이 버린 이한열의 운동화를 복원하려는 현대 미술품 복원 전문가 김겸 박사가 질문에 답을 제시해주고 있는 하다. 결국 이는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몫이며,  '간절함' '절박함', 그리고 '의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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