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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도를 넘었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기이한 현상을 일컫는 유체이탈을 우리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다름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한 각종 정치사회적 현안에 국정최고통수권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망각한 듯한 언행으로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수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아픔을 호소하는 주민을 향해 위로한답시고 "이왕 이렇게 된거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요"라고 말하고,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소연하는 대학생을 향해선 "등록금이 싸면 좋겠지만 너무 싸면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하고, 학원비가 비싸다는 주부에게는 "학원 안 보내면 된다"며 질문의 의도는 물론이고 분위기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황당함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루어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은 매번 국민들의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를 안겨주며 당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철학의 빈곤이 만들어낸 사회적 비극이었다. 국정최고통수권자의 천박하기 그지 없는 철학의 빈곤이 얼마나 범국가적인 치명적 해악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체이탈을 창시했다면 훗날 역사는 현 박근혜 대통령을 유체이탈을 집대성한 장본인으로 기록할 지도 모르겠다. 집권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는 시점에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가히 경이롭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16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며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설훈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설훈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관련한 루머를 언급한 바 있다. 


유체이탈현상은 대게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자아를 짓누를 때 발생한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켜 제3자로 빙의함과 동시에 책임을 전가시킬 대상에게 공을 넘김으로써 육신의 평안을 도모하는 식이다. 박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이같은 유체이탈의 정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최초 서면보고를 받은 10경부터 중대본을 찾은 오후 5시까지의 대통령의 행방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모르는 대통령의 사생활이며 국가기밀사안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다. 수백명의 국민들의 생사가 걸린 국가비상상황에서 무려 7시간 동안 (경내에 있었다면서) 단 한 차례의 대면보고도, 회의 소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이거니와 베일에 쌓인 대통령의 행적이 사생활이고 국가비밀이어서 밝힐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은 없고 권리와 지위만을 누리겠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박 대통령이 세간에 널리 퍼진 낯부끄러운 풍문의 진원지가 설훈 의원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산케이신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애초 조선일보가 불을 지피고 산케이신문이 기름을 부은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을 설훈 의원이 진화하면서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의 그날 행적에 문제를 제기한 것 뿐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앞뒤 말은 다 자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대단히 편리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은 "정국이 안정되지 않고 국회가 공전되고 있어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이쯤에선 완전히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는 초절정 고수의 풍모마저 느껴진다. 정국이 불안하고 국회가 수개월째 표류하고 있는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박 대통령은 전혀 모른다. 국민들이 무엇을 답답해하고 누구를 비난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 대목은 세월호 참사 당일 뒤늦게 중대본에 나타나서 게슴츠레한 얼굴로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하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세월호 참사의 실상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날처럼 여전히 박 대통령은 사태의 본질과는 수억만리는 떨어진 듯한 인식태도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유체이탈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닌 것"이라며 유가족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해 사실상 '내 알바 아니다'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문제삼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를 뒤흔든다'는 주장은 이미 대한변협 및 법학계에서 근거없다고 일축한 사안이다. 핵심은 진상규명이 대한 의지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이며 진정성의 문제이지 체계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수개월의 침묵 끝에 자신은 세월호 참사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공식화했다. 책임정치가 최고의 미덕이 되어야 할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의 책임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이 철학의 빈곤이 초래한 비극이었다면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은 거기에 과거의 트라우마가 더해진 것이어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이 단순하고 즉흥적이었다면 박 대통령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독단과 독선의 국정운영스타일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비민주적인 국정운영과 만기침람의 '나 홀로 행보'는 유신독재시절 아버지로부터 체득한 통치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든 결과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과정에서 나타난 박 대통령의 모습이야말로 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정판에 다름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단과 독선에 사로잡혀 민심을 거스르는 국가지도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박 대통령은 깨달아야 한다. 멀리 갈 것까지도 없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산증인이 아닌가. '나는 다를 것'이라는 위정자의 오판은 언제나 국가와 국민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 커다란 불행을 안겨왔음을 박 대통령은 잊어서는 안된다. 누누이 강조하는 말이지만 역사에 예외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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