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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의 앞날, 그야말로 캄캄하다

자유한국당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지방선거 참패로 당의 어두운 민낯이 완전히 드러난 한국당이 집안 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다. 뼈를 깎는 자세로 혁신과 쇄신에 매달려도 모자랄 시점에 패를 나눠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으니 가관이 따로 없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 와중에도 서로 살겠다고 진흙탕 내분을 벌이고 있으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돌고 돌아 결국 원점이다. 진저리나는 '친박-비박' 갈등이 결국 한국당을 집어삼키는 모양새다. 복당파 박성중 의원의 휴대폰 메모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잠자고 있던 불신에 불을 지폈다. 친박계는 이를 사실상의 '살생부'로 규정하는 한편 그 배후로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비박계를 의심하고 있다.

친박계는 19일 복당파 모임에 참석한 박 의원의 휴대전화에 적힌 '친박핵심 모인다→서청원, 이장우, 김진태, 박명재, 정종섭', '세력화가 필요하다-적으로 본다/목을 친다' 등의 내용을 문제 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비박계가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앞서 김 권한대행은 18일 '중앙당 해체'를 골자로 한 쇄신안을 발표한 데 이어, 20일에는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혁신비대위는 114명 전부를 다 수술대 위에 올릴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강도높은 인적청산과 세대교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친박계는 당 쇄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인적청산의 표적이 결국 자신들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복당파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홍준표 전 대표의 사퇴로 당권을 잡은 김 권한대행을 앞세워 대대적인 '친박 죽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 오마이뉴스


지방선거 이후 당 수습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1일 열렸던 한국당 의원총회가 친박-비박 간의 난상토론 끝에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된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의총은 무려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로 진행됐지만 두 진영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만 재확인시키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일단락됐다. 


이날 의총에서 김진태·이장우·신상진·정용기 의원 등 친박계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김 권한대행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김 권한대행이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발표한 쇄신안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날을 세웠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당내 쇄신 작업을 주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퇴 압력을 받은 김 권한대행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의총 하루 뒤인 2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마지막으로 준 기회에 정작 쇄신을 논의하기보다는 다시 친박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다"며 "정말 지긋지긋한 이 친박의 망령에 저는 참담한 심정이다"고 토로했다. 

친박계의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내비쳤다. 그는 "당대표 권한대행으로서 저에게 부여된 소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당이 다시 건강하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변화와 쇄신만이 정답"이라며 "이제 어느 누구도 혁신비대위를 피해 가려 해서는 안 된다"고 사퇴요구를 강하게 일축했다. 

김 권한대행이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하자 친박계는 재반격으로 맞섰다. 앞서 의총에서 김 권한대행의 사퇴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진태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성태, 친박의 망령이 되살아났다고. 가만 있는 내 목을 친다고 한 사람이 누군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래놓고 친박에게 뒤집어 씌운다. 김 대표는 있지도 않은 친박에 기대 정치생명을 연명할 생각 말고 쿨하게 사퇴하라"고 맹공을 폈다. 

한선교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당의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권한대행이 '친박의 망령'이란 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결속은 물론이고 상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자신들을 청산을 완수하는 도덕적 우위의 존재로 만들려는 애들 장난 같은 행위들을 하고 있다"고 김 권한대행과 비박계를 싸잡아 비판했다.

당 수습 방안을 둘러싸고 이처럼 '친박-비박'간의 치열한 이전투구가 펼쳐지고 있는 것은 결국 당권 장악을 위한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당권 장악은 2020년 총선 공천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공천권을 누가 거머쥐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적 명운이 달려있는 만큼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한국당이 지금 해묵은 계파 싸움에 몰입할 만큼 한가한 처지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당은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와 지방선거 참패 등을 거치면서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경쟁력에 심각한 의문부호가 붙은 상태다. 급기야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한국당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독설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모두가 합심해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한국당이 계파 싸움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배에 물이 차오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꼴이다. 이러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백날 무릎을 꿇어본들 냉소와 비아냥을 면치 못하는 것일 테다. 한국당의 쇄신안이 '눈속임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한국당이 볼썽사나운 내분에 휩싸여 있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분위기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수석·보좌관회의를 통해 "우리가 받은 높은 지지는 정말 굉장히 두려운 것이고, 이는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이다"라며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특별 당부한 데 이어, 민주당 지도부 역시 연일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해서는 안 된다고 점을 강조하고 있다. 


22일에는 민주당 기초단체장 당선인 151명이 국회에서 열린 당선인대회를 통해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지방정부' 수립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이 자리에서 추미애 대표는 "민심이라는 건 한순간이다. 우리가 실수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버림받을 수 있다"며 "높은 지지율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지방선거 승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만큼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겨달라는 주문일 터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재빨리 집안 단속에 나서고 있는 반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한국당은 극심한 내홍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극명한 대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공당으로서의 책임과 역할, 그리고 기본적인 자세의 문제다. 

어찌됐든,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친박'과 '비박' 간의 혈투는 승패와 상관없이 그 결과가 뻔하다는 사실이다. 친박계가 승리하든 비박계가 승리하든 한국당은 치명상을 입는다. 누가 이겨도 '공멸'하는 싸움인 것이다. 한국당은 정녕 어디로 가려는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당의 앞날이 그야말로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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